[2019]19.07.13 맑스주의 역사 강의 1 (발제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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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맑스주의 역사 강의 5장까지

장소: 생활정책연구소 카페 'LILA'

발제자: 임정빈


공산주의가 도대체 뭔데?

자본주의가 왜 나쁘다고 말하는건데?

아니 그보다..

마르크스가 도대체 누군데?


일상 생활을 하다보면 공산주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특히나 북한과 관련해 더욱 자주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듣고 사용하고 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의미를 모른채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451 회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공산주의 너 뭐냐?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보았습니다.

사회주의랑 공산주의랑 차이가 뭔데?

사회주의의 반대는 뭐지?

자본주의가 왜 나쁜데?

공산주의는 왜 나쁜데?

변증법이 뭔데?

자유주의가 뭔데?

유물론이 뭔데?

.

.

.

끝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고

토론 이전에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 더 비중이 컸던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회원을 중심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용어 정리는 발제파일에 있으니 한 번 살펴보세요.

그럼 질문 구경해볼까요?



성욕에 대한 억압을 통해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지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애의 자유로운 발현이 가능해지면 

여성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억압도 사라질 거라고 주장합니다. 

이 생각에서 영향을 받은 앙팡탱이 생시몽주의적인 요소와 푸리에적인 요소를 결합한 공동체를 만들어 성해방을 실현하고자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남성들이 여전히 임신과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시켜, 여성들은 해방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질곡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은 겉으로는 성해방을 얘기했지만 뒤에서는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성주의자들이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여성운동을 전개합니다.


성욕에 대한 억압을 통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였다는

 분석에 대해 토론해봅시다.


성애에 대한 자유로운 발현은 여성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억압을 사라지게 할까요? 

여성의 성욕에 대한 억압과 정치적, 사회적 억압의 관계의 타당성에 대해 토론해봅시다.


사실 이런 모습은 운동의 역사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긴 합니다. 

요즘 한국에선 여성 운동이 급진화되면서 분리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성해방에 관한 남성들의 모습, 여성들의 운동 방향 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얼핏 보면 문화산업은 즐거운 노동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제조업보다 고부가가치이고 노동도 창의적이고 즐겁다고 해요. 심지어 놀이와 노동이 결합된다고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회학자들이나 문화주의자들이 하는 주장인데, 정말 그래요? 

그런 사람들이 잘 드는 예가 애니메이션산업인데 애니메이션산업이야말로 대표적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산업이잖아요. … 

우리가 생각하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즐거운 노동이 문화산업이나 IT산업에서 실현된다는 건 상당 부분 거짓말이죠.


인류가 노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동이 변한다는 건 오랜 테마입니다. 포디즘, 포스트 포디즘과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는 테마와 관련해서도 그렇고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얘기해봅시다.


인간의 본질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의 사회적 관계가 앙상블을 이루고 여러 사회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항상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변화할 수밖에 없겠죠?


인간의 본질에 관한 얘기는 논란이 분분합니다. 

저도 맑스의 관점, 아니 저자가 해석한 관점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개인이 즐겁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사회적 관계가 자본주의적 관계입니다.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계급 사회의 관계라는 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욕망이 충족되어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본주의는 한 개인이 부자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사회적 관계라는 분석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봅시다.


국가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계급독재의 수단이므로 

국가가 중립적이고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는 것은 애초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맑스는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면 국가제도가 변할 수밖에 없다고 거듭 얘기해요. 

공산주의 사회로 가면 국가가 지금과 같은 기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살레주의자들은 국가가 항상 중립적 장치니까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국가가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얘긴 국가범죄나 전쟁 등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맑스주의자 내에서도 국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수용하려는 시도는 많은 것 같아요. 

여러분은 국가에 대해서 긍정적인가요, 부정적인가요?

모든 정치구조는 억압적 성질을 지니고 있을까요?



엥겔스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유물론의 개념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물질적 실체가 유일하고 근원적인 것이며, 관념 혹은 정신은 물질에 의존하는 비실재라고 주장합니다. … 

물질만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의식의 근거도 물질적 실체에 있고 인간의 의식은 파생물에 지나지 않게 되죠. … 

좋은 예술이란 객관적 실재를 정확하게 흉내 내는 정도에 따라 평가된다는 생각인데 

이것이 나중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원칙으로 규범화됩니다.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좋아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보시다시피 꼭 그렇진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관과 비슷한 게 이것인데, 여러분은 예술과 이러한 예술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엥겔스의 정치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엥겔스는 그 무렵 독일 사민주의가 이룩한 정치적 성과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특히 의회전술을 통해서 얻은 높은 득표율과 많은 의석수에 고무되어서 

의회장악을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아이디어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혁명의 모습은 더 이상 바리케이드 양편에서의 시가전이라는 낡은 형태는 아닐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의회 정치, 제도 정치 혹은 현실 정치라고까지 불리죠. 


엥겔스가 꿈꿨던 것과 현실은 많이 달랐지만, 의회 정치에 대해 ‘유일한 것’이라는 희망이나, 불신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평소에 국회를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역사학자들은 급격한 우경화, 반동화의 원인이 독일 사민당의 급속한 성장이라고 얘기해요. 

실제로 그 당시 독일 사민당은 당원이 수백만이었고 의회 의석수로도 제2당이었으며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 

가진 게 너무 많으니까, 몇십 년 동안 피땀 흘려 눈부시게 성장시킨 것들을 

혁명적 시도로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강하게 가지게 된 것입니다.

 고생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수전노가 되는 심리인 것이죠.


이 얘긴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중요한 주제인 것 같아요. 

가진 게 많아지면 변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죠. 성공의 딜레마인 셈인데,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맑스주의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나요?


독서에 지각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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