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9.05.04 두 도시 이야기 2 (발제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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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두 도시 이야기 2부 끝까지 - 찰스 디킨스

장소: 경기대학교 1강의동 1503호

발제자: 구나겸 / 운영진


시험기간동안 잠시 쉬었다가 토론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한 달을 쉬니까 책 내용이 가물가물하네요.

공백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독서의 흐름이 끊길 수 밖에 없을겁니다.

앞으로 페이스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 학기 독서계획의 성공 유무가 결정되겠지요! 화이팅입니다.


금주 발제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세련미가 감옥의 풍습과 어둠으로 기이하게 흐려져 있고,

그들이 처한 말도 안되는 더러움과 불행가운데 

그들이 너무나 유령처럼 되어버렸기에

스다네이는 마치 죽은 자들과 함께 서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유령이었다! 아름다움의 유령, 위풍당당함의 유령, 우아함의 유령,

자부심의 유령, 경쾌함의 유령, 재치의 유령, 젊음의 유령,노인의 유령,

모두가 그 황량한 해변에서 떠나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오며 겪은 죽음으로 인해 변해버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찰스 디킨슨이 라포르스 감옥을 표현한 위의 문장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공유해보세요.


그 시절 무섭게 망가뜨리는 시간의 손길 아래 놓인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지금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무자비한 여인보다

더 두려운 여인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강하고 두려움 없는 성격에서나 영리한 감각과 준비성에서나

대단한 결단력에서나 그 소유자에 대한 단호한 적개심을 더해주는 듯

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특징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종류의 아름다움에서나

그 뒤숭숭한 시절은 어떤 경우에도

그녀를 높이 추어올릴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잘못된 일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다

계급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을 가져온 덕에 그녀는 기회가 다가오자

암호랑이로 발전했다. 그녀는 동정심 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러한 미덕을 가졌던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이었다.


드파르주 부인은 각박하고 영악한 인간군상을 가졌습니다.

드파르주 부인을 결정적으로 변하게 만든 환경적요인과 내적요인은 무엇일까요?


 그녀의 성격을 상징하는 시대적 배경과 민중의 분노는 무엇일까요?


 외강내유형의 그녀가 왜 프로스 양에게 끝내 죽임을 당했을까요?

(프로스 양이 가진 강점을 비교해 보고 대처방법과 태도에 대해서 얘기해봅시다.)




이 시대의 여론은 너무나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국왕은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고 참수되었다.

자유 평등 우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공화국은 무장한 세상에 대항하여

승리 아니면 죽음을 선언했다.

 

중단도 동정도, 평화도,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휴식도 시간측정도 없었다.

낮과 밤은 시간의 초창기처럼 규칙적으로 돌았고,

천지창조 첫날과도 같았지만 다른 식의 시간 측정은 어떤 것도 없었다.

수도 파리의 혁명 재판소와 전국의 사만 내지 오만개의 혁명위원회 자유

혹은 생명의 안전을 뒷전으로 한 채 어떤 선하고 무고한 자라도

어떤 악하고 죄 많은 자에게 넘길 수 있는 용의자법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법정심리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옥 이러한 것들이

정해진 것들의 확립된 질서이자 본성이 되었고

몇 주 지나기도 전에 고대로부터의 관례처럼 보였다.

그것은 대중적인 농담의 주제였다.


소설 속 기요띤guillotine(단두대)의 상징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반복됩니다.

 기요띤이 상징하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안전한 정치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소설 속 공포정치의 장단점과 한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모범사례를 이야기해봅시다.


  


“저 대장장이가 말하는 법령이라는 게 뭡니까?”

다네이는 역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마당에 내려 그의 옆에 서서 물었다.

“아 망명자의 재산을 처분하는 법령이오.”(역장)

“언제 통과되었나요?”(다네이)

“14일에요.”(역장)

“내가 영국을 떠나던 날에!”(다네이)

“모두들 그게 여러 법령 중 하나라고 다른 법령들이 또 나올거라고 해요.

이미 나온게 아니라면 망명자들을 다 추방하고 돌아온 자들은

다 사형에 처하는 당신 목숨이 당신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는 그런 의미라오.

“그렇지만 아직 그런 법령은 없는 거죠.”

“내가 뭘 알겠소!” 역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있을지도 모르죠, 아니 앞으로 생겨날지도,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지 뭐가 낫겠소?”


역장은 왜 다네 에게 모르는 것을 추측하면서 말장난을 하는 걸까요?


이것을 통해 나보다 낮은 사람에겐 강한 척,

강한사람에겐 약한 척을 쉽게 하는 인간의 비굴한 본성은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 것일까요?

각자 처세술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얘기해봅시다.



루시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카턴이 보여주는 놀라운 희생정신은

낭만적으로만 생각되었지만 실상은 폭력적인 프랑스 대혁명에서 큰 감동을 줍니다.

————

나는 바사드와 클라이, 드파르주, 방장스, 배심원, 판사 같은

옛 체제의 붕괴 속에 생겨난 새로운 압제자들의 기나긴 서열이

이 보복적인 도구(기요띤, 단두대)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 지금,

오히려 이 보복적 기구로 인해 저들이 사멸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 아름다운 도시와 이 구렁텅이 속에서 떨치고 일어선 현명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앞으로 이들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며 승리와 패배를 맛보는 가운데,

이 시대와 (혁명을 잉태할 수밖에 없었던)

전 시대의 악행은 스스로 속죄하며 소멸하리라.

내게는 보인다. 내가 목숨 바쳐 사랑했지만 다시 볼 수 없을 그들이 

영국에서 보람 있게 성공을 누리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녀(루시)가 내 이름을 딴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나이 들고 구부정해졌어도 다른 부분은 완전히 회복되어

자신의 진료실에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헌신하는 그분(마네트 박사)의 모습이.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그들을 풍요롭게 해준

그들의 오랜 친구인 한 인자한 노신사(자비스 로리)가 평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들, 아니 세대를 지나 그 후손들에게도

마음의 성소가 되리라는 것을. 할머니가 된 그녀가 나를 추도하는 이 날,

나를 위해 우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와 남편이 이승의 행로를 마치고

지상의 마지막 침대에 나란히 누운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서로를 존경하는 만큼 나를 존경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게는 보인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내 이름을 딴 아이가 

한때 나의 길이기도 했던 인생길을 훌륭히 걸어가는 모습이. 

그 아이가 그 길을 훌륭히 걸어

내 이름을 빛내주리라는 것도,

그리하여 내 이름에 묻었던 오점이 지워지리라는 사실도 안다.

지극히 공정한 재판관, 명예로운 사람이 된 그 아이가 

역시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 내가 잘 아는 이마와 금발을 지닌 그 아이를 이리로 데려와

-그때가 되면 이 자리(오늘날의 콩코르드 광장)는 

지금의 끔찍한 흔적도 사라지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다정하고도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온 어떤 행동보다도 훨씬 더 숭고한 일이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그 어떤 안식보다도 평안한 안식을 향해 갈 것이다.

————

위 글은 단두대를 앞둔 카턴이 처형되기 위해 같이 있던 

재봉사 소녀와 대화한 후 남기는 마지막 독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독백을 남긴 카턴의 심정은 어땠을지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저기 서 있는 저 사람에게 착취당했어요.

우리 개 같은 평민들이 저 우월한 존재들에게 늘 그렇게 당하듯 말이죠.

가차 없이 세금을 내고, 보상도 없이 그를 위해 일하고,

그의 방앗간에서 곡식을 갈아야 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의 곡식으로 그가 키우는 수십 마리의 기금을 먹여야 하며,

우리 자신은 평생 가금 한 마리도 키우지 못하고,

그렇게 털리고 빼앗겨서 우리가 우연히 고기라도 한 조각 얻게 되면,

그의 하인들이 그것을 보고 빼앗아가지 못하게 문에 빗장을 채우고 

덧문을 닫은 채 두려움을 떨면서 먹어요. 

우린 그렇게 강탈당하고 쫓기고 그렇게 가난해져서, 

버지께선 세상에 아이를 내놓는 일이 끔찍한 일이라고 하셨고,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기도하는 건 우리의 여인들이 불임이 되어서

우리 이 불쌍한 종족이 멸종했으면 하는 거예요!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고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프랑스 근대 사상의 인권선언문을 보 모든 개인은 몇 가지 근본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단순한 범죄 뿐만아니라 지적재산권, 사유재산권 등 여러가지로

개인의 원천적인 권리를 국가가 부정하고 탄압하고,

우리의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했을 때,

개인은 권리와 이익을 쉽게 혼동하게 됩니다.


권리와 이익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게 정당한 태도일까요?


소설 속 소년의 입장이 되어서,

과연 나라면 국가로부터 받은 피해와 보상은 어떻게 주장할 것인지 토론해봅시다.

나의 권리존중과 개인적 영향력이 사회에 존중 받기 위해선

무엇부터 알아가는게 순서일까요?



그러자 어두운 구석에서 이제까지 한번도 움직이지 않던 씨드니 카턴이

나와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의 아버지와 로리씨만이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를 일으키고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는 그의 팔이 떨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단지 동정심만이 아닌 상기된 자부심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내 장화를 신어요. 이걸 손으로 잡아요 얼른 신어요 빨리!

“카턴,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어요.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은 나와 함께 죽을 뿐이오. 미친짓이에요.”(중략)

그 넥타이도 내 것과 바꿉시다. 그 외투도 내 것과 바꿔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동안 나는 당신 머리에서 이 리본을 풀어

당신 머리를 내 머리처럼 헝클겠소!

놀랍도록 신속하게 정말 초자연적인 의지력과 실천력을 발휘하여 

그는 이 모든 변화를 그에게 강요했다.


“나는 내가 내가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에 감사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후회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그는 쓰는 사람에게 눈길을 고정시킨 채 이 말을 하더니

손을 천천히 부드럽게 내려서 쓰는 사람의 얼굴로 가져갔다.


시드니 카턴의 죽음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 아가페적인 사랑을 했다.

그렇다면 카턴의 죽음은 짝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순애보인가?

죽음을 통한 순애보는 또 다른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자신을 파괴하는 사랑의 열정의

긍정적 특성과 부정적인 특성을 통해서

 현대사회 속 연인들의 자살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 볼 수 있는가?

(열정의 남용에 따른 범죄에 대해 애기해봅시다)


상호적으로 주고받는 열정관계에서 애정은 파괴적인 것이 아닌 

풍요로운 것으로 전환될 수 있지만 소유욕은 상대방을 구속하게 되며 

대리만족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에 보편타당한 답은 존재하는 것인가?

사랑에 대한 역설과 열정에 대한 이러한 편식성은

어디까지 냉정하게 봐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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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를 읽으며 책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분량이 많기도했고 사건이 다양하게 등장해서

전반적으로 헷갈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찰스 디킨스가 전하려고했던 의미들을 다시 생각하며

다음 토론 도서인 세계사 편력 2를 펼쳐보았습니다.


프랑스혁명이 책 내용의 절반이었는데

두 도시 이야기와 연계해서 읽으면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네요.



중간고사 치르느라 고생 많았고

다시 독서 삼매경에 빠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독서에 지각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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