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기생충, 더 아래로 내려가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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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기생충

DIRECTOR · WRITER: 봉준호

BOOK / MOVIE / ETC: 영화

SCORE ★★★★★

REVIEW:


영화의 상징적 해석이나 기법 이런건 다 제쳐둔 그냥 나의 감상. 개인적인 주저리 리뷰.


네이버 웹툰 금요일 베스트로 유명한 배진수 작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부모의 보살핌과 국가 인프라의 혜택에서 보호받던.. 아니, 육성되던 시절을 지나 사회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남은 50년, 6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은 지루한 노동의 반복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더 아래엔 그조차 허락되지 못한 누군가가 있었나보다. 


기우: '아니야. 더 아래로 내려가야해'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나로서는 그들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안하는걸로 보였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영화를 보고 나서 영 기분이 찝찝해 다시 생각해봤다.

어쩌면 노동조차 허락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유일하게 허락된 육체노동으론 현재의 삶을 깨버릴 수 없기에 그들이 택한건 최고의 숙주를 찾아 떠나는 것이었겠지.

갖은 꼼수로 고급 주택에 들어가 숙주를 이리저리 휘두루는 모습이 영락없는 기생충이었다.


비가 와서 날씨가 개었다. 정말 다행이다.


사모님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비가 와서 인생이 암울해진 수천명의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사모님 탓은 아니고. 그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잘못도 아니고. 씁쓸했다. 


주택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들이 처음엔 공상이나 환상같다고 생각했지만

양극화가 극도로 치달은 미국의 대공황 시절이 생각나며 거리로 내몰린 양복입은 거지가 바로 아버지 기택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시와 비교하기에 적절치 않겠지만 양극화를 생각하면 충분히 현실감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그 시절 미국, 아무리 바삐 출근하고 열심히 일해도 주당1달러를 넘지 못하는 암울한 인생들이

오늘날 인구 90%가 월급200만원을 받고 사는 인생과 다르다면 다르고 같다면 같은 상황일지도?




나는 젊고 시간이 많기 때문에 어제도 오늘도 책상에 앉아 찬란한 미래를 상상한다.

사회를 모르기 때문에 어제도 오늘도 꿈같은 직장생활과 사업을 꿈꾼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니 두려움이 솟구친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충고,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빠진다는 직장 선배들의 조언,

각종 문학과 에세이에서 읽어 내려갔던 견딜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이 주마등 처럼 지나간다.

평생 일해서 집 하나 장만 못한다는 이 현실이 갑자기 코 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았다.

이 사회를 만든건 우리들 자신인데.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도 기생충이 되는건 아닐까.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프렌차이즈에 돈을 바치고 대기업을 찬양하며 양극화로 가는 포장도로를 잘 닦고 있다.

좋은게 좋은거지 뭐! 안그래!


뭔지 모르게 계속해서 머리가 멍한 이유는 

영화가 보여준 사실이 너무 사실적이기 때문이겠지.


양극화는 갈 수록 더 심화될거라는데. 이 일을 어찌해야하나.

걱정된다. 두렵다. 치사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아니 바꿀 수 있을까? 


부모님의 우산이 없어진 뒤에야 비가 오는 것을 알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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