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황금 물고기 : 흐르는 강물을 붙잡으며 살았군요

조회수 1058

TITLE: 황금물고기

DIRECTOR · WRITER: 르 클레지오

BOOK / MOVIE / ETC:

SCORE ★★★★★

REVIEW:

 



스무살. 참 좋은 책들을 만났다. 그 중 두 권만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늘 이야기하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먼저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를 신나서 이야기 하겠지. 황금 물고기는 주인공 라일라의 생애를 그린 소설이다. 라일라는 어린 나이에 납치를 당해 연고도 없는 아랍 지역에 버려진다. 자신의 진짜 이름도 부모도 고향도 모른채 그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라일라'라는 이름은 납치범들에게서 그녀를 산 랄라 아스마가 지어준 것이다. 랄라 아스마는 라일라를 손녀처럼 아끼지만 그녀는 곧 죽게되고 그때부터 라일라는 홀로 생활하게 된다. 그 후 떠돌이 생활을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며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그곳을 찾아 나서는 라일라의 여정을 보고 있으면 한국 소설 '탁류'가 떠오른다. 여린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의 험한 물결 그 속에서 라일라는 표류한다. 3번을 다시 읽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주는 책이기에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했다. 흐음...그래 뭐 차례대로 업로드 하려고 한다. 다음의 글은 맨 처음 쓴 리뷰다. 2017년 스무살의 4월 해가 내려 앉은 오후. 광교 할리스 커피. 큰 창가를 마주한 자리에 앉아 들이 붓던 햇살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2017년 7월의 마지막 날, 교수님과의 독서모임에서의 일이다. 당시 나의 내면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불안과 죄책감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 이 모든 감정의 발화점은 그곳이다. 내가 내 손으로 빚은 ‘계획’이라는 그라운드. 그곳에서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싸운다. 오늘도 예외 없이 나는 나에게 패배한다. 손쓸 수도 없이 진득이 엉겨 붙은 감정에 땅에 붙어버린 두 발. 나는 단 한 뼘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날의 토론 도서는 손자병법이었다. 책에 대해 나눈 대화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나는 참석한 학생들과 교수님에게 내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저는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쓰레기입니다. 어쩌죠?”

교수님이 질문했다. “혹시 오늘 여기까지 오는 길에 우산을 쓴사람이 몇이나 되던가요?” 그 날은 오전에 잠시 비가 오다 모임이 시작될 즈음에는 완전히 그쳤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 대부분이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쓴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확신이 서지 않으니 일단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우산을 쓴 사람이 몇 명이었는지 떠올리지 못한 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나요?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드나요?”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인생의 대부분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의도보다 강한 흐름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잘못된 게 아닙니다”



내 스무 살에는 여행이 없다. 갈 기회가 없진 않았다. 오히려 많았지만 매번 엎어지기 일쑤였다. 그 이유는 여행을 앞두고서 드는 어떤 마음의 소리 때문인데, 그것은 ‘아깝다’다. 이전까지는 당연하게 생각했다.여행에 투자하는 돈은 아까운 것이라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행을 기피하는 일련의 선택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모험에 대한 두려움.

아깝다는 평과 함께 늘 하던 말이 있다. “여행 갈 돈으로 00을 하고 말지!”라는 가성비 논리.빈칸에는 주로 자격증 공부와 책 등이 들어간다. 인풋이 확실하면 가시적인 아웃풋을 들고 오는 효자 분야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돈을 투자하고 철저한 계획이 있다고 해도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안전한 선택과 모험 사이에서 나는 늘 전자를 택했다.

계획에 투자하는 것도 이런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완벽한 계획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수납장이 필요하면 수납장이 들어온 후의 가구 배치를 생각해 그것과 조화를 이룰 책상과 의자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수납장을 산다.

대체로 그 완벽한 계획은 오히려 기대하는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낳는데 책상이 너무 길다거나 벽과 책상 사이의 공간이 의자보다 크다거나. 그래서 구조를 바꾸면 수납장이 보기 싫어지고. 결국 모든 것은 똥이 된다. 그래서 내 방은 인테리어가 수개월간 계획한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조합들로 채워져 있다. 엉망진창.



나는 라일라를 떠올린다. 책을 읽는 내내 불안했다. 악당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 곤경에 처한 히어로를 볼 때 처럼. 라일라가 자신의 고향에 끝내 도달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상상하면 그러했다. 내 걱정과는 달리 라일라는 자신의 근원에 도착하지만, 그 결말을 읽으면서도 이런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고향이 꿈꿔온 곳이 아니라면?

애초에 고향이라는 판단이 착각이었다면?

라일라가 찾던 근원이 실체도 없고 설명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렇다고 나는 믿었다.


라일라가 도착한 곳이 고향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계획에 대한 집착이나 여행에 대한 편견과 동일한 지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앞선 고민들과 같이 뒤집어졌다.


라일라는 진짜 고향에 도착했을까? 알 수 없다.

라일라는 자신의 근원을 찾았다? 그렇다.


라일라는 매 순간 그곳을 꿈꿨고 땅을 밟는 순간 자신의 근원이라고 느꼈다. 지친 라일라는 그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라일라가 찾는 근원이 명확한 주소 그러니까 수많은 아프리카 부족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내 오류였다. 그녀가 경험한 모든 것 책 속의 지식과 사랑의 경험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흔까지, 라일라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라일라의 근원은 그곳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의 근원을 찾아 세상을 표류하는 라일라의 모습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흔들리는 우리 모습이다. 라일라는 결국 자신의 근원을 찾았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획이라는 틀에 삶을 주조한다. 도자기를 빚 듯 강약을 조절하며. 그 결과 조금만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게 돼도 분노한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자. 삶은 흐름이라는 것을.

지금 글을 쓰는 나조차, 이 순간이 흘러 구성할 미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성장한다는 것.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듣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이 미래로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안다면 무의미한 싸움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내려와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진정한 황금 물고기가 된 라일라. 그녀가 내 삶을 보면 이렇게 말하겠지. 

"당신, 흐르는 강물을 붙잡으며 살았군요"


2017년 8월 2일 권사랑(20)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제작한 오디오 클립을 함께 듣는 것을 추천한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07/clips/11

문학동네 오디오 클립 "우리가 읽어야 하는 문학고전" 

소설가 김연수가 읽은 『황금 물고기 -  결국에는 모두 자신에게 돌아가는 이야기 中



<1>


"지금 가는 별은 어딘가요?"

"음.. 고양이 별이군요"

"우리가 고양이 별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별들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그래서 고양이 별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특별해지는 거죠. 라일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걸 깨닫게 됩니다. 즉 특정한 인생의 한시기를 누군가와 보낸다면 그건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간을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걸,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특별하고 소중해진다는걸,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라일라는 관찰해요."



<2>


"관찰?"

"네 관찰, 마치 낯선 지방을 방문한 어린아이처럼, 또 모든 것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이. 파리에서 라일라가 한 일은 이런 것이에요. '나는 모든 구역들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바스티유, 페데르 브살리니 , 쇼세당탱, 오페라, 마들렌, 세바스토폴, 콩트르스카르프, 당페르로슈로, 생 자크, 생당투안, 생폴. 오후 세시에도 잠든 듯 조용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부자들의 구역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역도 있었다. 그 어떤 구역은 무척 소란스러운 데다가 둘러보면 교도소 울타리와 흡사하게 붉은 벽돌로 된 기다란 담, 계단과 난간과 공터들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의 공원들.' 또 이런 문장도 있어요. '나는 지리학과 동물학에 대한 책을 읽었고 졸라의 『나나』와 『제르미날』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세 가지 이야기』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 슈바르츠바르의 『마지막 의인』…'"

"와.. 끝이 없군요. 라일라는 시간이 무척 많은 여자아이였던 모양이군요?"

"그렇다기보다는.. 자기 생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혹시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자기 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확하게 그 말을 하려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 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맞고 보고 들을 거예요.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죠."



<3>


"그 황금 물고기가 하는 일은 뭔가요?"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에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 순간 성장해요. 바뀌고 또 바뀌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우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