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시인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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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동주

DIRECTOR · WRITER: 이준익

BOOK / MOVIE / ETC:  MOVIE

SCORE ★★★☆

REVIEW: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_ 쉽게 쓰여진 시


0. 주절주절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_ < 사막 > 오르텅스 블루

내가 처음 시를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학이란 것을 처음 접했다. 그 전에도 독서는 좋아하였지만 보통 역사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었고 소설같은 문학도 읽어보라는 부모님의 말에도 그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읽어 볼 생각을 안헸다. 그땐 책을 읽는다는 것에 어줍잖은 선민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책을 '유흥'으로 즐기라는 것은 독서에 대한 나의 특별한 에고를 침범하는 일이 었다. 내게 독서는 배우는 것이며 딱딱한 것이고 다른 무엇보다 더욱 대단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 나를 바꿔준 은인을 만난다. 그분은 중학교 3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다.

역사 과목을 담당하고 계시던 선생님은 학기 초 우리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우리에게 돌아가면서 매일 아침마다 시 한편 씩을 교실 앞에서 암송하라는 것이다. 남자 중학교 특유의 철없는 정서와 반대쪽 극에 서 있던 얘기였다. 당연히 우리는 질색했다. 나 역시 단지 역사 선생님이라는 것에 호감을 가졌었던 선생님을 이제는 현실감각없는 비호감 몽상가로 생각했다. 무슨 '죽은 시인회의 사회'라도 보고 감명받아 무작정 따라하시는 건가, 싶었다. 문학이라고는 백만광년보다 훨씬 더 떨어져있을 남중 학생들에게 시를 낭송하라니.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현명하신 분이었다. 당시 내기와 승부에 죽고 못살던 우리에게 딱 맞는 조건을 내신 것이다.

"단, 시는 하루에 2명 씩만 앞에 나와 낭송한다. 낭송이 끝나면 너희들이 더 감명 깊었던 시에 거수로 투표를 하는거야. 더 많은 득표를 얻은 사람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토너먼트가 다 끝나면 3등까지는 막대한 보상을 보장하지!"

물론 처음엔 영 반응이 시원찮았다. 뭔 보상이야, 나가서 공이나 차게 해주시죠, 그냥 노래 배틀이나 뜨죠 등등. 하지만 남자 중학교 특유의 폭력을 기반한 권위란 막강한 것이다. 곧, 선생님은 우리를 찍어누르셨고 우리는 순순히 시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소위 '시 배틀'에 열광했다. 초기에는 아무 시나 대뜸 준비해오던 애들도 어느새 패자부활전이나 뭐다 토너먼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좋은 시를 찾아 왔다. 모범생, 농땡이, 까불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승부욕을 불태웠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꼴찌권을 찍은 후 충격을 받아 중학교 2학년 때 전교 40등까지 올리면서 모든걸 불태웠던터라 중학교 3학년 초에는 그저 두터운 패딩을 입고 반 맨 뒷자리에서 하루종일 잠만 잤다. 무기력함에 절어있던 나는 남들보다 더 '시 배틀'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대충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5분 전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하나 외워 낭송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웬걸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웬만큼 올라가니 나도 좀 욕심이 생겼다. 상품도 상품이지만 아니 일단 승부는 이기고 봐야하지 않는가. 엄청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떤 시를 해야 애새끼들한테 감동과 여운을 줄 수 있을까? 길이가 긴게 좋을까 짧은게 좋을까? 주제는 무엇이 좋을까? 어떤 어투로 말해야 좋을까? 등등 내 딴에 할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연구했다. 

마땅한 시를 못찾아 고민하던 나는 우연히 지하철 역 광고 패널에 적혀있던 시를 보게 된다. 그 시가 바로 위의 <사막>이다. 처음에는 읽고 무슨 헛소린가 싶었다. 무슨 발자국보면 외로웠던게 없어지나. 말도 안되는 소리라 생각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계속 머릿 속에 맴돌았다.

그러다 며칠 후, 심야에 학원을 마치고 혼자 집으로 걸어오는데 문득 저 시가 생각나 뒤로 걸어보았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뒤로 천천히 뚜벅뚜벅.그때 느꼈던 감정을 차마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 꽤나 울먹거리는 감정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서늘한 밤, 거리엔 아무도 없었고 개인적으로도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2년 중 첫 1년이었다. 나도 그때까진 단지 지쳐 무기력해진걸로만 알았던 것이 알고보니 꽤 쓸쓸하고 외로웠었던 것이다.

그때 시, 문학에 대해 깨달았다. 시는 사람을 노래하구나. 그리고 알려주는구나.

그리고 나는 '시 배틀'에서 그 시를 낭송했고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은'북산' 했다.
그때부터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비로소 내게 독서는 '유흥'이 되었다. 시를 직접 쓰게된 건 나중에 다른 계기를 통해서지만 어쨌든 이 일이 내게 초석으로 남겨진 것이다.

요즘도 시를 쓴다. 비록 마지막으로 쓴게 5개월 전이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꾸준히 쓸 예정이다.

시는 비장한 선언문이나 철저한 설명문에서 줄 수 없는 것들을 준다.

그게 뭔지는 각자만 안다. 문학은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보이는 법이니까.


1. 시인


"동아일보에 당선될 정도면 내래 왜 반대 하겄어." _ 동주父

영화 <동주>는 그런 시를 다룬다.

윤동주 시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서시>를 쓴 사람이라 좋아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 서시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다룬다. 일종의 전기인 셈인데 다른 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생을 담담하게 정말 박평식 비평가의 한줄평처럼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 적은 것 같았다.

그의 인생은 희극보단 비극에 가깝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잘 담아냈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이야기를 담아내는 구성도 탁월하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으로 일본 형사가 동주를 심문하면서 동주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문'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코 쉽지 않았던 동주의 인생을 간결하게 나타낸다. 구성만으로 독자 및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흑백 화면이라는 장치, 심문을 통한 심리적 압박, 영화 중간마다 나오는 동주의 시 독백. 관객들은 자연스레 이 구성들이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느낌을 흡수하게 된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_ 병원

그도 사람인 만큼 그의 일생 또한 하나의 시상이 된다. 영화 초반에는 시인이 되고 싶은 그를 노래한다.

"당선이 아이되는데 발표를 어찌케 하니." _ 동주

매일같이 놀고 붙어다니던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나란히 걷고 있는 줄 알았던데 어느 순간 친구가 혼자 저 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거면 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니. 글 쓰는게 뭐 권력이니?"
"시 그거이 아무나 쓰는거다." _ 몽규

동주는 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정작 시인엔 그렇게 뜻이 없는 몽규가 받아 특히 그랬다. 시가 전부인 자신은 정작 선뜻 발표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설상가상 문과에 가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가 된통 깨지기까지 한다. 그에 반해 몽규는 독립군에 들어가는 등 자신만의 신념을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몽규가 또래에 비해 특출난 것이지만 그런 몽규에게 동주는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 모금에서
하루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_ 흰 그림자 

"그 비싼 공부를 해가면서 뭐하러 문과에 가야 하겠다는 게야. 그 정도로 비싼 돈이가 들면 의사나 될 것이지." _ 동주父

몽규가 돌아오자 동주는 그와 함께 연희전문( 연세대학교 전신 )에 문과로 들어가게 된다. 내심 아들이 의과에 가서 편한 삶을 바랐던 아버지 였지만 막상 아들이 좋은 학교에 가니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이 장면도 참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다. 이 영화가 한 편의 시같다고 느낀 장면이기도 하다. 시는 글로써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비유 등을 통해 나타낸다. <동주>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적지 않게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또한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속상하지만 자랑스럽고 기쁜 느낌.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_새로운 길


2. 사람


"이 정도 글 재주면은 얼굴 완전 개박살 났다 이거.난 살아서 만나고 싶지가 않아, 나는." _ 처중
"따로 소개는 안해도 되겠네. 개박살난 이여진이야." _ 여진

시인은 사람을 노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사람이 되어야한다. 동주는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점차 변하게 된다. 멀리 북간도 변방에 살아 특별한 경험을 하기 어려웠던 그는 연희전문에 오자마자 여진을 만나며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_별 헤는 밤

그 외에도 피 끓는 청춘인지라, 몽규와 문학에 대한 가치관 대립으로 갈등을 겪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동주가 몽규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어쩔땐 동경하는 것 같다가 또 언젠 둘도 없는 우애를 느낀다. 하지만 심한 의견 대립으로 물과 기름같은 사이가 되었다가 미친듯이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며 어느 장면에선 가까이 있어도 서로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모든 감정이 실제로 동주가 몽규에게 느꼈을 모든 감정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감정이란 복잡한 것이다. 영화는 이를 잘 나타내었다. 특히 몽규의 간결한 대사와 크게 변함없는 표정은 몽규가 동주에게 느끼는 감정을 최소화 시키기 때문에 더욱 동주에게 몰입하게 한다. 그러한 구성 탓인지 몽규는 동주를 한결 같이 친구로 대했을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어떤 입장이든 그리고 동주가 어떤 입장에 서있든 몽규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동주를 보았을 듯 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는 동주는 달랐다. 동주는 몽규의 입장에 따라 그를 여러 모습으로 본 듯 하다. 

어른스럽고 성숙스러운 사람은 몽규지만 관객은 우리의 모습과 닮은 동주에게 더욱 몰입할 수 밖에 없다.

"근데 읽고 나서 왠지 좀 쓸쓸해졌어. 왜 그럴까?" _ 여진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_별 헤는 밤

동주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더욱 성숙해진다.

사실 성숙해진다는 말이 적절한지 의문이 간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경험이 많아질 수록 우리는 성숙해져 가는 것일까? 그러면 어른이 되는 것일까?

경험이 많아질 수록, 세월이 흘러갈 수록 더욱 쓸쓸해져 가는 것이다. 이미 그리운 시절은 너무나 멀리 있으니까.

동주도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동안 많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좀처럼 동주가 성장했다, 어른이 되었다라는 느낌은 받기 힘들었다. 보통 다른 인물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특별한 계기를 통해 무언가 깨닫고 발전한다. 하지만 <동주>는 그저 노래할 뿐이다.

우리 삶도 <동주>와 같다. 사는데 요령이 늘지언정 정말 성숙해져 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성숙됨에 미덕이란 없다. 나이를 먹음에 아까운 세월이 지나갈 뿐이다. 소크라테스 마저 피하지 못하는 죽음이기에 모든 인간은 죽겠지. 우리는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열심히 나아갈 뿐이다. 세월이 흘러감에 미덕이란 없다.

<동주>는 이러한 생각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창씨개명, 강제 징집 그리고 생체 실험. 그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 그리고 그에 반한 의미있는 경험이 많았지만 결국 그는 노래하며 쓸쓸히 죽어갔다. 성숙, 성장 따위가 들어갈 자리가 없도록 그는 단지 노래했다.

 만약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되어져야만 하는 존재라면 '동주'는 미성숙인 채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럼에 나는 성숙을 부정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 사람이다. 동주는 그 자체로 동주일 뿐이다.


3. 부끄러움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유학을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유학을 간다는게 웬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요." _ 동주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나. 부끄러운 걸 아는건 부끄러운게 아니야. " _ 정지용

"넌 왜 나한테 같이 가자는 말은 안해?" _ 동주
"동주야, 니는 여기 있어야디. 걱정하지 말라." _ 몽규

창씨개명이 시행되자 몽규는 중경(광복군 창설지역)으로 간다. 동주를 학교에 남겨둔채로.

시간이 지나 몽규는 임시정부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고 동주는 감옥에 면회를 가면서 재회하게 된다.

"동주야, 우리 일본으로 가자." _ 몽규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_ 아우의 인상화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_ 바람이 불어

몽규와 재회한 동주는 몽규의 제안으로 연전을 같이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나선다.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조선 땅에서 일본말 일본이름으로 공부할 바에 일본 땅을 가자는게 몽규의 이유였다.

'히라누마 도쥬'

일본에가서 둘은 대학 입학 시험을 치룬다. 둘이 같은 시험장에서 쳤지만 몽규만 목표로 했던 제국대학에 붙게 되고 동주는 떨어져 다른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_참회록

윤동주 시하면 생각나는 시어는 '부끄러움'이다.

그는 무엇을 그렇게 부끄러워한 것인가. 영화에 정지용 시인이 부끄러움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말한다. 동주에게 일본 유학을 권하는 것도 부끄럽고, 아무 말 못하는 자신도 부끄럽다고. 하지만 부끄러운 것을 아는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한다.

역설적이다. 애초에 부끄러운 것을 모르면 부끄러울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지용 시인의 저 말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 그 뜻을 찾아 볼 수 있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는 정말 많은 것을 자책했다. 영화에서 잘난 몽규는 그러한 동주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효과는 관객에게 동주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더 이상 부끄러움에 대해서 무엇이라 감상평을 남기기 어렵다. 그렇기 떄문에 윤동주 시인도 시로써 남긴 것이 아닐까.

나도 그 저의에 따라 그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설명하는 것을 대신한다.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_ 공상

"이제 도망갈데가 없다." _ 동주
"동주야, 니는 시를 계속 써라. 총은 내가 들꺼이니까." _몽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_쉽게 쓰여진 시

동주의 부끄러움은 일본 유학 생활이 이어질 수록 점점 커지게 된다. 그에게 일본 유학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의 부끄러움은 끝내 시로써 해결하지 못했다. 몽규와 다른 조선인 유학생들은 결국 잡혀가게 되고 동주도 다음날 체포된다.

"저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당신... 당신 말을 들으니까... 정말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못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기만 한게 부끄러워서 서명 못 하겠습니다." _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 서시 

시로써 세상을 보고 또 그것을 바꾸고자 했던 동주는 끝내 시인이 되고자 한 과거를 부끄러워한다.

시를 좋아하던 사내가 시인이 되기를 부끄러워한다.

시대의 비극이며 또 한 시인이란 슬픈 천명 아래 겪을 수 밖에 없는 시련이다.


4. 시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_ 자화상

<동주>를 보고나서 시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가 정말 인생의 끝에서 시를 썼던 것을 부끄러워 했을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쉬이 써내려갔던 글들을 떠올려보니 나 역시 부끄러워 졌다.

문학이란 다양한 해석만큼이나 그 자체의 의미 또한 심오하다. 문학이란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동주의 시들은 그에게서 흘러온 것일까, 멀리 북간도에서 흘러온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흘러나와 그가 살았던 시대로 간 것일까, 아니면 다시 그에게로 돌아간 것일까.

사실  <동주> 리뷰를 쓴 까닭은 오랜만에 실컷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싶었기 떄문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엄청 읽었다. 글 쓴 시간보다 시를 읽고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다.

게다가 쓰면서 드는 생각은 어떻게 시를 읽고 느낀 감정을 잘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의미있는 것이지만 일단 설명하기로 한 이상 최대한 노력해보았다. 하지만 선뜻 내 감정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타인의 시에서 느낀 깨달음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 글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 글이다. 그러나 억지로 써내려갈 바에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동주>를 보지 않았다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어쩄든 여기는 독서 동아리니까 앞으로 문학을 접할 일도 많을 것이다. <동주>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준다.

시를 써보지 않았다면 한번 써보라.

생각보다 뭉퉁한 글로써 잘 정리되는 감정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미워져만 가던 사람이 그리워져 다시 돌아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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