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리스 비극 걸작선 : 오이디푸스 왕 /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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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그리스 비극 걸작선

DIRECTOR · WRITER: 소포클레스 / 아이스퀼로스

BOOK / MOVIE / ETC: BOOK

SCORE ★★★★★

REVIEW:


  1.아이스퀼로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아이스퀼로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삼부작을 창작했다. 삼부작은 『불의 운반자 프로메테우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결박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총 3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은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이다. 이 작품은 비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로, 비극의 완성자로 불리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대비되는 여러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요소들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분석과 비교에 들어가기에 앞서,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뜻을 거역하고 불을 훔쳐 인간의 손에 쥐어준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소스 산의 높은 암벽에 결박시킨다. 암벽에 찾아온 물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들이 그가 제우스와 화해할 것을 권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이것을 무시한다. 이때 암소로 변한 이오1)가 암벽을 지나가다 프로메테우스를 목격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오에게 그녀의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려주며 그녀의 후손 가운데 한명2)이 훗날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오가 떠난 뒤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몰락을 예언하고,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어 이 예언의 내용을 알아내려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예언에 대해 끝까지 함구한다. 이에 제우스는 벼락을 내려 그를 심연으로 가라앉게 만든다.


1) 이오는 제우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희생양인 암소의 모습이 되어 각지를 떠돌고 있었다.

2) 헤라클라스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를 죽여 해방시킨다.




    2.구조적 형태 비교


  오이디푸스 왕의 서사는 워낙 유명한지라, 설명을 생략한다. 이제 오이디푸스 왕과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두 작품의 본격적인 분석과 비교에 들어갈 것이다. 두 작품의 구조를 비교할 때 기준 삼을 만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수많은 희랍문학자들이 인용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가장 논리적인 비교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시의 창작원리와 본질을 설명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비극과 관련한 장에 나오는 개념들을 참고하여 구조적 형태를 비교하도록 하겠다.


    2.1. 단순한 것과 복합적인 것


  비극은 ‘단순한 것’ 과 ‘복합적인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단순한 것은 단일하고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것이고, 복합적인 것은 사건의 결과가 필연성이나 개연성으로 인해 뒤따라 일어나는 반전이나 발견을 포함하는 것이다. 간단히 풀어 이야기하면, 이것이 저것 ‘다음에’ 일어나는 것과 이것이 저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 왕』은 각각 이 두 가지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는 암벽에서 움직일 수 없는 주인공의 상태로 인해 그가 있는 암벽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프로메테우스를 찾아오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된다. 등장인물들은 프로메테우스에게 지금이라도 제우스에게 용서를 빌고 그에게 협조하라고 타이르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끝까지 거부하며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는 극 진행 동안 새로운 등장인물은 나타나지만 특별한 사건이 생겨나지는 않으며,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키기만을 반복한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인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가 보낸 헤르메스에게 예언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아 심연인 타르타로스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시간적 연속성(tade meta tade)이 주를 이루는 ‘단순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오이디푸스 왕』은 이와 반대되는 논리적 인과성(tade dia tade)이 주를 이루는 ‘복합적인 것’에 해당한다. 논리적 인과성은 연쇄관계를 가진다. 작품 『오이디푸스 왕』은 이오카스테의 전 남편인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으려는 오이디푸스의 말에서 말로 꼬리를 무는 추적 과정이 주를 이룬다. 이 추적과정에서 오이디푸스가 했던 말들이 모여서 진실에 다가가는 단서가 된다. 오이디푸스는 무서운 진실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마침내 베일에 가려져 있던 가장 거대하고 두려운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의 눈을 찌르게 된다. 이렇듯 오이디푸스 왕은 연쇄관계로 이루어진 내용들이 촘촘히 짜여 있다. 결말에 다가가는 순간순간의 사건 진행을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나 꾸며낸 표시에 의존하지 않는다.


    2.2. 격정적 효과


  비극은 대부분 격정적 효과를 수반한다. 격정적 효과는 파괴와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말한다. 극에 나타나는 격정적 효과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나누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극에서 격정적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어떤 ‘수단’이 사용되는 지를 바탕으로 나누는 것이다.


      2.2.1. 관계성 : 에크트라(ekhthra)와 필리아(philia)


  에크트라는 개인들을 적대적인 상태에 둠으로써 그들 사이에서 격정적인 행동이 있더라도 당연한 관계를 말한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의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의 관계가 에크트라에 해당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말을 거역하고, 제우스는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프로메테우스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런 적대적 관계로 인해 제우스는 암벽에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하고, 그에게 벼락을 내리치는 등의 고통을 주어 격정적 효과가 나타나게 한다.

반면 필리아는 개인들을 혈연, 결혼, 환대 등을 통해 벗이 되게 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어떤 격정적 행동이 벌어진다면 매우 끔찍한 일이 되어버리는 관계를 말한다. 『오이디푸스 왕』의 테바이 왕족 일가의 관계가 필리아에 해당한다.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친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이오카스테는 자살을 하는 등 격정적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2.2.2. 볼거리 : 파토스(pathos)


  격정적 효과의 두 번째 경우를 서술하기에 앞서 비극의 요소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비극에는 줄거리, 성격, 표현, 사상, 볼거리, 노래의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이 중 볼거리는 극작가의 역량과는 가장 거리가 먼 부분이다. 볼거리는 비극적 효과를 산출할 수는 있지만, 그 때의 원리는 극작가의 역량과 관련이 없다. 게다가 볼거리는 기괴한 것처럼 비극성과 무관한 형태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기괴한 것은 날 것 상태의 두려움, 직접적인 두려움, 그 어떤 반성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육체적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에게 끔찍하고 기괴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통해 쉽게 그런 고통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때 나타나는 격정적인 효과를 ‘파토스’라고 부른다.

파토스는 무대 위에서 보이는 것, 즉 본질적으로 볼거리와 연결된 것으로서 살인이나 심한 고통 등과 같은 장면을 통해 생겨나는 격정적인 효과를 말한다. 즉각적인 감각과 관련된 날것의 감정은 두려움이든 연민이든, 엄밀한 의미에서의 비극적 감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감정은 시각에서 멀어질 때 금방 가라앉아버리기 때문이다.

서로 적대적인 에크트라인 경우에, 격정 그 자체(kat auto pathos)에서 생기는 격정적인 행동이 빚어내는 ‘줄거리의 부분’을 직접 봐서 생기는 감정이 비극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3).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파토스들이 극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반면에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필리아의 경우는 격정적인 행동들(en tais phliais…ta pathe)은 볼거리가 아니라 사건들 그 자체로 인해 빚어지는 숙명적인 결과에서 비극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오이디푸스 왕』은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 왕』, 두 작품의 구조적 형태를 살펴보았다. 각 소주제에서 도출한 특징들을 종합해 볼 때, 구조적인 측면에 있어서『오이디푸스 왕』은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보다 완성도가 높은 비극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밝힌 견해이다.




  3. 상징적 형태 비교


  다음으로 각 작품 속 주인공인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의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볼 것이다. 두 인물은 서로 공통되는 상징과 서로 상반되는 상징 모두를 가지고 있다. 먼저 공통적인 상징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3.1. 두 명의 선구자


(누군가에겐 익숙할 선구자상)

  선구자는 말을 탄 행렬에서 가장 앞에 선 사람을 뜻한다. 선구자들은 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남다른 식견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남을 이끄는 지도자격 역할을 한다.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는 각각 인간과 테바이의 선구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에서 언급되는 인간들은 하루살이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인간들을 파멸4)에서 구하고 그들에게 문명의 구체적인 이미지인 불을 제공한다. 이렇듯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문명세계를 건설할 수 있게 한 인류의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오이디푸스가 테바이의 선구자라는 것은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작품의 제목부터 암시되어 있다. 오이디푸스가 테바이의 훌륭한 통치자라는 점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첫 장면에 등장한 사제의 눈에 오이디푸스는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니라 해도 인간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자, 가장 위대한 자, 가장 고결한 자, 스핑크스에게서 테바이를 해방시킨 가장 지혜로운 자로 비친다. 코로스인 테바이 노인들의 눈에 비친 오이디푸스도 마찬가지다.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오이디푸스는 테바이 국민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는 선구자적인 왕이었다.


    3.2. 예언자와 탄원자 : 신 프로메테우스와 인간 오이디푸스


  결말부에 이르러 선구자적인 면모를 잃고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른 오이디푸스와 달리, 프로메테우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구자의 영웅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그는 고통을 덜기 위해 스스로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두 인물의 선택이 갈렸던 것은 신과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프로메테우스는 신이자 ‘예언자’라는 위치에 있다. 작품 안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오케아노스의 딸들에게 자신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 아니기 때문에 제우스를 두려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우스 역시 운명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훗날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권좌에서 쫓겨나고 현재의 자신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갖는 의미5) 그대로 제우스의 운명을 먼저 알고 있다.

반면 오이디푸스는 작품 속에서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에게 진실을 알려 달라 부탁하는 ‘탄원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오이디푸스는 살해범의 정체를 밝혀 달라는 자신의 요청을 거절한 테이레시아스에게 격노하고 그를 매도한다. 오이디푸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인간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가 된 오이디푸스가 자기 자신과 관련된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다는 것은 『오이디푸스 왕』에서 드러난 역설이고, 인간인 오이디푸스의 한계를 의미한다.


4) 제우스는 인간 종족 전체를 말살하고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려 했다.

5) 프로메테우스 : pro-먼저, 앞서 metheus 보는 자




  이로써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와 『오이디푸스 왕』의 구조적, 상징적 형태의 분석과 비교를 모두 마쳤다. 앞서 오이디푸스는 선구자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앞에서 탄원자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이는 암벽에 결박당했지만 예언자로서 미래의 일들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풀려나게 될 프로메테우스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역시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그것은 그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때 그랬듯이, 끝까지 수수께끼를 추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어 얻었던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어냄으로써 잃어버리게 되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지혜로운 인물 오이디푸스는,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수께끼도 알아낼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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