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크리스 하먼 선집,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DIRECTOR · WRITER:크리스 하먼/노라 칼린, 콜린 윌슨
BOOK
SCORE ★★★★★
REVIEW:
트랜스젠더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트랜스섹슈얼), mtf(ftm. 남성에서 여성, 여성에서 남성. 성전환 수술을 안 하고 성정체성만 반대 성인 사람도 포함),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소위 정신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 셋이다. 여기선 첫째와 둘째 의미 위주로 쓴다.
트랜스젠더는 여성 트랜스가 남성 트랜스보다 10배 더 많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트랜스 여성이 더 많은 건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건 인류 공통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북아메리카에 살던 플레인스 인디언 집단에서는 사회경제적 이유로(들소 가죽 무역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낮아져 트랜스 여성은 사라졌지만 트랜스 남성(그들의 용어로 버다치)은 19세기까지 존재했다. 그런데 왜 똑같이 남성중심사회인 현대 사회는 다른 걸까? 물론 현대 사회가 ‘남성중심사회’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배나 차이가 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트랜스젠더가 많은 나라의 사례를 조사하면 그 기제를 찾을 수 있다. 태국이 대표적인데, 알려졌다시피 태국은 트랜스젠더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굉장히 많다. 그런데 트랜스 여성이 많다. 태국은 성판매(성노동. 필자는 성노동이란 단어를 더 선호할 때가 많지만 성상품화를 지적하는 맥락에 따라 대체로는 성판매로 표기하겠다. 어떤 단어를 쓰든 본문의 요지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 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다. 태국 같은 동남아 지역에서는 외국인들이 ‘섹스 관광’을 하러 가는 문화가 있을 정도다.
트랜스젠더의 성매매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은 트랜스 여성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트랜스 남성이 성판매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로 트랜스 남성의 성판매는 거의 없거나 사실상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통계나 사례를 구할 수 없었지만 그것 자체가 일종의 방증이라고 여겨진다). 적어도 다른 경우의 성판매보다는 압도적으로 경우의 수가 적겠다. 아마 이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논증하지 않더라도 필자에게 반박할 사람은 딱히 없을 것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트랜스 여성이 많은 건 여성 인권이나 트랜스젠더 인권이 잘 보장돼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국도 트랜스젠더 차별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편견 때문에 취업에 지장이 생긴다. 그래도 성판매는 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동시에 현실이다). 주로 보수 언론 쪽에서 선정적으로 보도하지만, 태국에 트랜스젠더 성매매가 많은 건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트랜스 여성은, 생물학적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해도 성판매로 먹고 살 수 있지만 평범한 노동 계급의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경제적 자살에 가까운 선택인 것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보다 높다는 의미가 되진 않는다. 그보다는 복잡하다. 그러나 어쨌건 태국의 현실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돌아간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태국 같은 ‘후진국’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려는 건 아니다. 태국이 성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성노동자를 양산하는 현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트랜스 여성이 많은 이유를 남자는 전쟁 때문에 많이 끌려가서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를 배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전쟁이 안 일어난 나라는 없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론 부족하다.
또한 태국에서 트랜스 여성이 많다고 하여 여성 인권이나 트랜스 여성 인권이 높다고 착각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아니다. 성평등 지수를 조사하는 각종 지표가 있다. 각 지수마다 차이가 심하며, 원래 이런 지수는 객관성을 많이 담보하기 힘든 면이 있지만 참고용은 될 수 있는데 태국이 한국보다 성평등 지수가 낮게 나오는 경우들도 있다. 태국보다 상위에 랭크되는 국가들도 항상 많은 걸 보면 태국이 특별하게 여성 인권이 높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트랜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덜하다는 인식도 재고가 필요하다. 그 트랜스 여성들이 많은 경우 성판매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성판매 여성이 ‘실장’ 같은 사람에게 좋은 대접을 받더라도 그것이 ‘관리’라는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처럼, 태국에서의 성판매 트랜스 여성도 마찬가지다. 물론 숫자가 많으면 인권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생기긴 하겠지만 그 한계를 명확히 봐야 하며 그것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현상은 항상 그 현상이 구조화되는 사회적 관계들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이게 비단 태국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기제고,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면 발생하지 않는 기제다. 한국도 트랜스 여성이 트랜스 남성보다 많다. 또한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 심도가 높은 나라다. 통계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한국에서도 트랜스 여성에 대한 많은 서사는 성매매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태원에 트랜스젠더 바들이 정말 많은데, 대부분 트랜스 여성에 대한 성매매다. 남산에서도 트랜스 여성 성매매가 있었다는 기사들이 있고, 알기 어려워서 그렇지 더 많을 것이다. 태국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연구하기 쉬워서 방법론적으로 선택됐던 거지, 태국 사례를 통해 추출할 수 있는 기제가 한국 사회에 통용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 매체에서 트랜스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것도 고찰해야 한다. 하리수가 그렇고, 최근 유튜브에서의 꽃자의 사례 등등이 있다. 또 노파심에 말하는 것이지만, 성상품화를 당하는(혹은 스스로 성상품화를 하는) 트랜스 여성이나 성판매를 하는 트랜스 여성 개인들을 혐오하고 문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 행위의 층위와 사회적 층위는 구분돼야 한다. 홍석천에 대해서도 ‘게이는 여성스럽다’는 인식을 대중 매체에서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봐야지, 성보수주의를 관철시키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대중 매체는 트랜스 여성은 다루지만 트랜스 남성은 잘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이 글의 논지 중 하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정체성도 성상품화된다(모든 트랜스 여성이 꼭 그렇다는 것도, 그런 기제만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기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정체성은 생물학적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물론 생물학적 요인도 아주 중요한 요인이지만).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그게 젠더다. 자본주의 사회는 성상품화에 따라 개인들의 성정체성을 성적 대상화라는 형식으로 왜곡되어 나타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을 검증하려면 몇 가지 필요하다. 첫째, 여성 인권 지수와 성매매 지수를 비교해서 공분산, 상관 계수를 구한다(예측대로라면 정이든 부든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을 것이다). 둘째, 성매매 지수와 성전환 수술 숫자(성비까지)를 비교한다. 여기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면 지지될 것이고, 아니라면 이 가설은 틀린 것일 것이다. 꼭 성매매여야만 되는 건 아니지만 성상품화 지수라는 건 구체화하기 힘들다. 여건이 되는 대로 다른 수치로 보완한다면 더 좋겠다. 성정체성은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워서 수치화하기 매우 어렵지만, 성전환 수술 숫자는 비교적 수치화가 쉽다. 후자를 토대로, 전자를 알아보는 설문 조사 같은 것을 활용하여 더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귀찮지만 언젠가 해보긴 해야겠다.
TITLE:크리스 하먼 선집,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DIRECTOR · WRITER:크리스 하먼/노라 칼린, 콜린 윌슨
BOOK
SCORE ★★★★★
REVIEW:
트랜스젠더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트랜스섹슈얼), mtf(ftm. 남성에서 여성, 여성에서 남성. 성전환 수술을 안 하고 성정체성만 반대 성인 사람도 포함),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소위 정신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 셋이다. 여기선 첫째와 둘째 의미 위주로 쓴다.
트랜스젠더는 여성 트랜스가 남성 트랜스보다 10배 더 많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트랜스 여성이 더 많은 건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건 인류 공통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북아메리카에 살던 플레인스 인디언 집단에서는 사회경제적 이유로(들소 가죽 무역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낮아져 트랜스 여성은 사라졌지만 트랜스 남성(그들의 용어로 버다치)은 19세기까지 존재했다. 그런데 왜 똑같이 남성중심사회인 현대 사회는 다른 걸까? 물론 현대 사회가 ‘남성중심사회’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배나 차이가 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트랜스젠더가 많은 나라의 사례를 조사하면 그 기제를 찾을 수 있다. 태국이 대표적인데, 알려졌다시피 태국은 트랜스젠더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굉장히 많다. 그런데 트랜스 여성이 많다. 태국은 성판매(성노동. 필자는 성노동이란 단어를 더 선호할 때가 많지만 성상품화를 지적하는 맥락에 따라 대체로는 성판매로 표기하겠다. 어떤 단어를 쓰든 본문의 요지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 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다. 태국 같은 동남아 지역에서는 외국인들이 ‘섹스 관광’을 하러 가는 문화가 있을 정도다.
트랜스젠더의 성매매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은 트랜스 여성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트랜스 남성이 성판매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로 트랜스 남성의 성판매는 거의 없거나 사실상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통계나 사례를 구할 수 없었지만 그것 자체가 일종의 방증이라고 여겨진다). 적어도 다른 경우의 성판매보다는 압도적으로 경우의 수가 적겠다. 아마 이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논증하지 않더라도 필자에게 반박할 사람은 딱히 없을 것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트랜스 여성이 많은 건 여성 인권이나 트랜스젠더 인권이 잘 보장돼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태국도 트랜스젠더 차별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편견 때문에 취업에 지장이 생긴다. 그래도 성판매는 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동시에 현실이다). 주로 보수 언론 쪽에서 선정적으로 보도하지만, 태국에 트랜스젠더 성매매가 많은 건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트랜스 여성은, 생물학적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해도 성판매로 먹고 살 수 있지만 평범한 노동 계급의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경제적 자살에 가까운 선택인 것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보다 높다는 의미가 되진 않는다. 그보다는 복잡하다. 그러나 어쨌건 태국의 현실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돌아간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태국 같은 ‘후진국’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려는 건 아니다. 태국이 성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성노동자를 양산하는 현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트랜스 여성이 많은 이유를 남자는 전쟁 때문에 많이 끌려가서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를 배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전쟁이 안 일어난 나라는 없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론 부족하다.
또한 태국에서 트랜스 여성이 많다고 하여 여성 인권이나 트랜스 여성 인권이 높다고 착각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아니다. 성평등 지수를 조사하는 각종 지표가 있다. 각 지수마다 차이가 심하며, 원래 이런 지수는 객관성을 많이 담보하기 힘든 면이 있지만 참고용은 될 수 있는데 태국이 한국보다 성평등 지수가 낮게 나오는 경우들도 있다. 태국보다 상위에 랭크되는 국가들도 항상 많은 걸 보면 태국이 특별하게 여성 인권이 높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트랜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덜하다는 인식도 재고가 필요하다. 그 트랜스 여성들이 많은 경우 성판매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성판매 여성이 ‘실장’ 같은 사람에게 좋은 대접을 받더라도 그것이 ‘관리’라는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처럼, 태국에서의 성판매 트랜스 여성도 마찬가지다. 물론 숫자가 많으면 인권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생기긴 하겠지만 그 한계를 명확히 봐야 하며 그것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현상은 항상 그 현상이 구조화되는 사회적 관계들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이게 비단 태국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기제고,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면 발생하지 않는 기제다. 한국도 트랜스 여성이 트랜스 남성보다 많다. 또한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 심도가 높은 나라다. 통계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한국에서도 트랜스 여성에 대한 많은 서사는 성매매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태원에 트랜스젠더 바들이 정말 많은데, 대부분 트랜스 여성에 대한 성매매다. 남산에서도 트랜스 여성 성매매가 있었다는 기사들이 있고, 알기 어려워서 그렇지 더 많을 것이다. 태국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연구하기 쉬워서 방법론적으로 선택됐던 거지, 태국 사례를 통해 추출할 수 있는 기제가 한국 사회에 통용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 매체에서 트랜스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것도 고찰해야 한다. 하리수가 그렇고, 최근 유튜브에서의 꽃자의 사례 등등이 있다. 또 노파심에 말하는 것이지만, 성상품화를 당하는(혹은 스스로 성상품화를 하는) 트랜스 여성이나 성판매를 하는 트랜스 여성 개인들을 혐오하고 문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 행위의 층위와 사회적 층위는 구분돼야 한다. 홍석천에 대해서도 ‘게이는 여성스럽다’는 인식을 대중 매체에서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봐야지, 성보수주의를 관철시키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대중 매체는 트랜스 여성은 다루지만 트랜스 남성은 잘 다루지 않는다. 이것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이 글의 논지 중 하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정체성도 성상품화된다(모든 트랜스 여성이 꼭 그렇다는 것도, 그런 기제만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기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정체성은 생물학적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물론 생물학적 요인도 아주 중요한 요인이지만).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그게 젠더다. 자본주의 사회는 성상품화에 따라 개인들의 성정체성을 성적 대상화라는 형식으로 왜곡되어 나타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을 검증하려면 몇 가지 필요하다. 첫째, 여성 인권 지수와 성매매 지수를 비교해서 공분산, 상관 계수를 구한다(예측대로라면 정이든 부든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을 것이다). 둘째, 성매매 지수와 성전환 수술 숫자(성비까지)를 비교한다. 여기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면 지지될 것이고, 아니라면 이 가설은 틀린 것일 것이다. 꼭 성매매여야만 되는 건 아니지만 성상품화 지수라는 건 구체화하기 힘들다. 여건이 되는 대로 다른 수치로 보완한다면 더 좋겠다. 성정체성은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워서 수치화하기 매우 어렵지만, 성전환 수술 숫자는 비교적 수치화가 쉽다. 후자를 토대로, 전자를 알아보는 설문 조사 같은 것을 활용하여 더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귀찮지만 언젠가 해보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