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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인간 수업

DIRECTOR · WRITER: 진한새





1. 소라게와 껍질


“여기 미성년자고 나발이고 안가리고 팔아먹는 악질 포주” 오지수는 소라게를 상징한다. 오지수에게도 가족은 있다. 하지만 그 가족들은 다 집을 나갔고 지수의 ‘껍데기’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오지수는 존재하지만 위태롭다. 


반면 부잣집 딸 배규리는 ‘껍데기’ 내지는 ‘집’을 상징한다. 규리는 자신이 누군가를 지켜줄 힘과 지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녀가 지킬 대상이 없다. 부잣집 딸이지만 독립하기 위해 도둑질이나 친구들을 타락에 빠뜨릴 정도로 도덕관이 무너져 있다. 그래서 배규리는 튼튼하지만 공허한 집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서로가 완전함을 채워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올바른 답은 아니었(다고하)지만.




2. 과자봉지 & 자크 데리다


지수는 규리가 먹다 버린 과자 봉지를 차곡차곡 모은다. 이것은 지수의 규리에 대한 마음을 상징한다. 지수와 규리가 좀 더 나은 상황에서 서로를 사랑을 했더라면, 좀 더 완전하고 올바른 성취로 이어질 수 있었다.


지수가 한 행동들(ex.규리가 준 물건의 냄새를 맡아보기)을 보면,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이 떠오른다.


“그녀가 내 곁에 없을 때 나의 소중한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범한 우스꽝스런 일들을 모두 기술하자면 끝이 없다. 나는 침대에 입을 맞추며 그녀가 그곳에서 잠을 잔 것을 떠올리고, 커튼과 방안의 모든 가구에 입을 맞추었다. 이들 모두가 그녀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손이 이 모두를 만졌었고, 내가 드러눕곤 했던 바닥마저도 그녀가 그 위를 걸었다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고백록)


철학자 데리다에 의하면 여기서 루소가 얘기한 모든 ‘대상’들은 (친엄마를 잃은 루소의)그녀의 부재에 대한 보충물이거나 대체물이다. 데리다는 “텍스트 바깥의 세계는 없다(Il n'y a pas de hors-texte)”는 말을 했다. 


마치 유럽의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디즈니랜드’는 디즈니랜드 바깥의 세상을 ‘실재’라고 착각하게 만든다고 했듯이, 데리다는 텍스트 바깥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또다른 텍스트, 또다른 기호, 또다른 연쇄적 보충의 고리를 발견한다고 생각했다. 


지수가 차곡차곡 모은 과자봉지는 규리에 대한 완전하고 순수한 사랑의 대체물이고, 또다른 보충이다. 심지어 규리가 옆에 있더라도 지수가 꿈꾸는 ‘사랑’의 원본은 계속적으로 연기되고 파악되지 못한다. 그 둘은 (지수의 생각에)잘못된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수의 옆에 있는 규리는 규리 그 자체가 ‘원본’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자체가 어떤 특별한 사랑의 부재를 상징한다. 그래서 더더욱 지수는 매개와 보충이 필요하다.




3. 비극으로 가는 길 


그리스 비극들은 '하마르티아(hamartia)'와 '발견(agnorisis)'과 관련이 있다. 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빗나감'이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 비극적 주인공들은 최선을 다해도 결국 과녁에서 빗나갔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발견'은 플롯의 핵심이다.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자발적'이어야 한다. 지수와 규리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이것을 권선징악으로 해석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인간수업>을 본 많은 사람들은 지수와 규리에게 '공감'했고,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사람들이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비극들과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지수의 결말은 마치 <오이디푸스>에서 자신의 아버지임을 모르고 살해한 것처럼, 비극적이다. 마치 신들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그도 자기 운명에서 도망치려고, "틀린 답에 목숨을 걸었"지만,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4. 같아서 떨어져야 하는 지수 & 같기에 함께 가야하는 규리 (MBTI)


담임선생님이 이 둘을 분석한 기록에서 말하기를,

“고지능-저감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 여기서 잠시 MBTI를 꺼내보면, 지수와 규리의 성격 궁합은 정말 최고의 조합이다.. 배규리의 성격은 ENTJ이다. 보통 외향성(E)과 함께 판단형(J)을 같이 갖고 있는 사람들은(-ENTJ, ENFJ, ESTJ, ESFJ), ‘보호자(guardian)’로서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데 능력과 수완이 좋은 편이다. 


반면, 오지수는 INTP이다. 이들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하는 능력이 좋은 편이다. 규리는 지수의 아이디어에 눈독을 들인다. ENTJ는 아이디어를 확대/적용하고 세상을 조작하는 데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보통 정치인이나 사업가로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유형으로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애플을 경영했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작중에서도 규리는 나름 괜찮은 수를 두면서도 일을 크게 벌리는 경향이 있다. 


MBTI로 봤을 때, INTP와 ENTJ는 서로를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배규리와 오지수는 서로의 주기능(Dom)과 부기능(Aux), 열등기능(Inf)까지 전부 같다. 서로 사고(T)를 주기능으로, 부기능은 직관(N), 열등기능은 감정(F)으로 쓴다. 단지 에너지의 방향만 외향과 내향으로 다를 뿐이다. 순서가 모두 같되 에너지의 방향이 서로 다르기에 보완할 수 있다. 


특히 규리의 E(외향성)과 J(판단)은 체스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끔 만든다. 작중에서도 게임을 포기하는 지수와는 달리 규리는 끝까지 체스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임하는 모습이다.


- 오지수는 “우리가 너무 똑같아서” 서로가 떨어져야 하지만, 배규리는 자신의 반쪽을 만났기 때문에 지수와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중에 많은 힌트가 나온다. 규리는 주인공도 아니고, 잘 드러내지 않기에 그가 보여준 행동에서 단서를 찾아야만 한다. 특히 ENTJ, ESTJ 같은 유형들은 보통 감정이 행동이나 사고를 못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야 "발견"한다.


규리가 한 일을 나열해보면,


소화전을 건드려 처음으로 학교 벌점을 받으면서까지 지수를 지켰고, 용케 모았던 돈을 모두 실장 월급을 내주는 데 쓰고, 경찰이 학교에 왔을 때 민원 전화로 도와주고, 민희를 자르는 데 결단력이 부족했던 지수를 옆에서 바로 도와주고, 깡패들과 파트너쉽을 체결해 지수를 살려내면서 사업을 확장한다. 모든 수가 파멸의 길에 들어서자,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바나나 노래방에 잠입해 성매매알선혐의를 유대열에게 모두 덮어 씌우고, 심지어 마지막 화에서는 자기 부모님을 협박해 뜯어낸 돈으로 오지수와 함께 호주로 가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누군가는 이런 일련의 행동을 두고서 ‘전우애’라고 표현하겠지만, 거의 참-사랑 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행동들이다. 하지만 지수도 ‘고지능-저감성’ 캐릭터라서 그런가 규리의 감정을 진정으로 꿰뚫는 모습은 아니다. 



5. 서민희라는 안티테제(antithesis)


작중 등장인물인 서민희는 '고지능-저감성'과는 반대로 '고감성-저지능'에 속한다.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제가 자기자신을 소거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유재산제-프롤레타리아트]는 서로가 쌍으로 '소멸'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헤겔의 정립과 반정립의 소멸은 작중 인물인 서민희와 오지수-규리라는 양쪽이 서로 쌍으로 '소멸'하는 과정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0. 사회문제제기?


제작진이나 기자들이 "사회문제제기" 같은 말을 하는데, 그냥 남한에 아직까지 살아 숨쉬는 선비들이 두려워 통상적인 말을 뱉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를 실제로 보면 이게 배규리의 찐한 사랑을 표현한 라노벨인지 <루머의 루머의 루머>처럼 진정으로 사회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드라마인지 헷갈린다. 물론 좋은 작품들은 항상 여러가지 각도에서 해석이 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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