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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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수레바퀴  아래서

DIRECTOR · WRITER:   헤르만  헤세

BOOK / MOVIE / ETC:   소설

SCORE ★★★★★

REVIEW:



    교육의 본질? 교육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이라 나와 있다. 교육은 유일하게, 국민의 의무이기도, 권리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학교 때까지 의무교육 기간을 지정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을 받으며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만 보아야하는가? 상식적으로 접근해보자. 국가, 사회의 입장에서 교육은 국민들, 피교육자의 입장에서의 교육과는 상당부분 다를 것이다. 국민을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면... 국가는 그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맞는 것일까.




학교 선생님을 냉정하고 고지식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아이들의 잠자고 있는 재능을 끌어내어 공부를 향해 나아가게 할때, 아이들은 진지하고 도덕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선생님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는 아이들의 거친 본능을 누르고 국가가 원하는 평화롭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학교의 사명은 치밀하게 계획된 훈련을 통해 아이들을 사회의 바람직한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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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한스는 신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목사가 되는 것은 엘리트가 선택해야하는 ‘당연한’ 길이며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더 나은 진로는 없었다. 적어도 당시 독일 사회에서는 말이다. 독일 사회는 똑똑한 학생들을 신학교에 입학시켜 종교에 헌신하는 숭고한(?) 삶을 살도록 했으며 독일 국민들은 대부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시 답답함을 느끼는가...? 신학자라는 직업이 별로냐고 묻는 것이 아니다. 연봉, 워라밸 그런걸 떠나서, 한스 자신의 인생을 살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스는 자신이 무얼 좋아하든(사실 무얼 좋아했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들’이 설정한 엘리트의 길에 몸을 맡겼으며 끊임없이 휩쓸리다가 결국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았다. 한스가 불쌍한가? 당신은 한스랑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과 학부모의 치맛바람에 시달린 그대라면 깊은 회의에 잠길 것이다. 사회가 원망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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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의 죽음을 살펴보면 생각의 윤곽이 잡힐 수도 있다. 한스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한스의 잘못이다’, ‘아니다, 사회의 잘못이다’라는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이다. 정답이 무엇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사회의 영향으로 인해 한스가 죽임 당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고! 한스는 정체성에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사회가 하라는 대로 했으니까. 한스 내면이 제시하는 대로가 아닌, 사회가 제시하는 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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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질문을 던져보겠다. 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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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Google Image



    죽음의 원인은 사회에게 있지만, 난 사회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사회는, 국민을 딱히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굳이.... 개개인의 행복을? 사회는 곧, 개개인의 복합체이다. 다수가 모여 사회를 만든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아니 ‘남’들이 내가 조금 불행하다고, 인생 조X다고 관심이나 가질까. 가족이나 친구들은 아파할 수 있겠지.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사회에서, 그들은 나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화는 나지만 ‘개돼지’라는 비유에 공감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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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정리해보자. 한스의 죽음은 타살이다, 사회에 의한. 하지만 사회는 잘못이 없다. 사회가 제시하는,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방향은 사회의 발전이지, 개인의 행복이 아니다. 사회는 훌륭한 일꾼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에 합당한 교육 컨셉을 제시하고 유망한 인재들을 먹이고 키워 일꾼으로 만든다.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개인의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겠지. 하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구 안에만 있다면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거 아닌가. 국가는 일꾼들에게 꽤 괜찮은 대가를 줄 것이고(국가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안 할 것임에 손모가지를 건다) 몇몇은, 아니 대부분은 이런 꽤 괜찮은 대가에 만족하며 살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가 정하는 방향대로 이끌려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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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학교는 천재적인 학생을 억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고 학교에서 쫓겨난 천재들이 훗날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훌륭한 인물이 되기도,  어떤 경우에는 반항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망가뜨리고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





 

    이제,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국가는 봉사단체가 아니다. 타인의 집합체라는 것을 명심해라. 사회의 입맛에 맞춰 맘편한 개로 살것인가, 당신의 입맛대로 미래를 일궈낼 것인가. 두 생각 모두 장단점이 있고 생계유지와 자아실현 모두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가치이다. 따라서 어느 편에 서든, 그 사람을 비판할 수 없다. 그러나 한스가 되지는 말자. 사회의 희생양이 되긴 싫지 않은가. 사회가 제시하는 답이 나에게 이롭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나를 뼛속까지 갉아먹게 놔두진 말자. 적어도 몸뚱아리는 지켜야지. 몸뚱아리 빼면 남는것 없는 인생....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딜레마와 유사하다. 난데없는, 쓸데없는 의심이 절대 아니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던져야하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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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Google Image



    Be the realist, but dream unrealistic dream in your heart, 쿠바의 위대한 혁명가 체게바라가 남긴 말이다(생뚱맞은가!). 필자가 신념처럼 가지고 있는 말이기도 하고 혹시나 도움이 될까 적어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더 많다. 하나 밖에 없는 인생이다.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기위해 좀 더 안간힘을 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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