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20대 남자 보수화 현상'은 정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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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자살론

WRITER:에밀 뒤르켐

BOOK 

SCORE ★★★★★

REVIEW:자살론은 사회학에서 유명한 고전 가운데 하나다. 이번 학기가 세대사회학 수업을 들으면서 쓴 레포트가 있는데 생각이 나서 여기에도 축약해서 올려본다. 자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대표로 꼽았지만 참고한 책은 여러 책이다.

‘문재인에 대한 지지율 하락, 낮은 지지도,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등을 근거로 ‘20대 보수화’ 담론이 불거졌었다(사실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나 문재인에 대한 낮은 지지가 다른 정파, 특히 우파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기 때문에 이는 ‘정치 무관심(즉 소위 ‘탈정치화’)’으로 읽어야 한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높았던 2018년 5~6월(20대 84퍼센트, 20대 남성 79퍼센트)과 지지율이 하락한 11~12월을 비교해 봐도 20대 전체와 20대 남성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은 각각 1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20대 남성의 낮은 문재인 지지율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양효영, 노동자 연대, 2019-02-13, https://wspaper.org/article/21635

“더 주목할 만한 특징은 문재인 지지에서 이탈한 20대의 향방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 지지 정당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61퍼센트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나머지 연령대는 38~47퍼센트).“, 「20대 남성은 “반페미니즘 전사”가 됐는가?」, 양효영, 노동자 연대, 2019-06-05, https://wspaper.org/article/22267


시사인이 최근(2019년 4~ 5월. 현재는 관리자가 검토중인 기사라며 열람이 되지 않는다) 이른바 ‘20대 남자 현상’을 분석하며 페미니즘 정책에 대한 반발로 문재인 지지율이 낮아졌다고 주장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친여성 정책을 대단하게 펼친 것도 없다. 더욱이 문재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 “여성 인권 치중/성갈등”을 이유로 꼽은 비율은 매우 적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문재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 “여성 인권 치중/성갈등”을 이유로 꼽은 응답자는 1퍼센트밖에 안 됐다. 20대 남성이 문재인을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한 항목은 고용노동 정책 부분이었다(부정 평가 72퍼센트). 20대 여성 절반도 같은 의견이었다.(갤럽 2월 4주차)“, 「지금까지 이런 남 탓은 없었다」, 양효영, 노동자 연대, 2019-03-06, https://wspaper.org/article/21739


20대가 성별에 따라 문재인 정부를 다르게 평가했다면 지지율 등락은 상반돼야 하지만 유사한 지지율 등락을 보였다.


“그동안 20대 여성과 남성은 거의 유사한 지지율 등락을 보여 왔다. 젠더 문제가 핵심이라면 성별에 따라 지지율 등락이 상반돼야 할 텐데 말이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지지율은 20대 남녀 모두에서 10퍼센트씩 하락했다(갤럽 2월 3주차 조사).”, 「지금까지 이런 남 탓은 없었다」


혜화역 시위 등에서도 젊은 여성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해왔다. 물론 그 비판은 문재인이 ‘남성’이기 때문에 비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지울 수 없지만 어쨌거나 20대 여성의 지지율도 하락한 걸 생각하면 20대 여성들의 문재인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으로 기울었다는 걸 알 수 있다.

20대의 문재인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진 것은 경기 침체와 좁아진 취업문, 문재인 정부의 개혁 약속 미이행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의 개혁 약속 배신으로 이런 기대는 무너졌다. 문재인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청년 실업률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김용균 씨의 죽음 같은 가슴 아픈 참사가 반복됐다. 공공부문 양질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안전 등 차별 해소, 최저임금 인상 등 청년들의 현재와 직결된 약속도 뒤집혔고, 집값 폭등 등도 청년들의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20대 남성은 “반페미니즘 전사”가 됐는가?」


물론 20대 남성 사이에 ‘반페미니즘’이 없는 거야 아니겠지만 시사인의 주장은 과장된 방법론적 문제도 있다.


“이번 〈시사인〉 글은 20대 남성 책임론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만 과장하는 방법론적 문제도 보인다. 이번 설문조사가 뽑은 표본이 과연 얼마나 20대 남성의 의식을 정확히 보여 주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20대 남성 중 공고한 ‘반페미니즘’ 의견을 보이는 25퍼센트와 나머지 75퍼센트를 구분해 통계를 냈는데, 그러다 보니 소수인 25퍼센트의 의견이 과대 대표돼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긴다.

예컨대, “여성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일로 성공하려는 노력이 남자보다 약하기 때문이다”라는 질문에 대해 공고한 ‘반페미니즘’ 그룹은 52퍼센트가 “매우 동의”했지만, 전체 20대 남성으로 보면 사실 25퍼센트 정도만 “매우 동의”한 것으로 나온다.“, 「20대 남성은 “반페미니즘 전사”가 됐는가?」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은 일자리 분배의 문제를 20대끼리의 취업 경쟁으로 전화시키며 이간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예컨대 앞서 인용한 노동자연대의 양효영 기자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20대 남성은 전 연령대 ‘성인남성’ 중에서 성평등에 대해 가장 개방적인 연령 집단이다.


“201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사분담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항목에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응답이 20대 남성의 경우 80.0퍼센트, 20대 여성의 경우 83.0퍼센트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조사결과가 불과 10년 전 20대의 인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2008년만 해도 20대 남녀의 긍정 응답률은 각각 44.0%, 61.3%에 불과했다.”, 『공정하지 않다』, 박원익ㆍ조윤호, 지와인, 2019, 91p.


그러나 지지율 등락은 비슷하더라도, 20대 남성과 여성이 젠더에 따라 문재인 지지율 차이가 큰 것 자체는 사실이다.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조사(12월 10일~14일, 2509명 대상)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문재인 지지율은 29.4퍼센트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반면 이들의 부정평가는 64퍼센트로 가장 높았다(평균 부정평가 46.8퍼센트, 긍정평가 48.4퍼센트). 리얼미터는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63.5퍼센트로 높았다며 이런 현상을 ‘젠더 갈등’으로 설명했다.“, 「20대 남성의 낮은 문재인 지지율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양효영은 “20대 남녀 모두에서 10퍼센트씩 하락”했다며 거의 유사한 지지율 등락을 보였다고 주장하지만 절대적으론 양쪽 다 10퍼센트씩 하락했다 하더라도 남성의 절대적인 지지율 자체가 여성의 절대적인 지지율보다 낮기 때문에, 상대적인 하락폭은 남성이 더 급격하다고 봐야 했다.

20대 남성 ‘보수화’가 아니라 ‘탈정치화’로 봐야 하며, 젠더에 따른 사회 통합도 차이가 20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존재하는 차이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즉, 20대 남성보다 20대 여성의 사회 통합도가 더 높으며, 이러한 차이는 20대 여성의 더 높은 정치 참여도(그리고 20대 남성의 상대적으로 낮은 정치 참여도, 곧 ‘탈정치화’)를 낳는다.


20대 여성이 20대 남성보다 사회 통합도가 높다는 주장은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사회 통합도의 차이를 조사하는 방법으로 자살률과 취업률, 종교인 비율, 집회 조직도 등을 볼 수 있다. 뒤르켐의 ‘자살론’에 의하면 자살률은 사회 통합도와 반비례 관계에 있다. 나머지 부분들도 차차 보겠지만 모두 사회 통합도와 관련이 있다.

사회 통합도가 높을수록 정치 참여를 많이 할 거라는 건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도 이해가 갈 만한 얘기일 것이다. 원자화된 개인이 사회 참여적인 일을 하지 않고 탈정치화되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며, 주변에서 그러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도 자주 관측되는 듯하다. 이와 관해 전상진(2009, 9p)의 선행 연구를 살펴볼 수 있다.

“학교제도는 동년배 학생들을 오랜 기간 다른 세대성원과 사회제도로부터 감금하여 나름의 생각과 의식을 만들 수 있도록(혹은 그럴 수밖에 없도록) 돕는다. 오늘날 10대들은 이런 의미의 독립과 감금 상태에 있지만, 20대는 그것에서 이중적으로 ‘해방’되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대와 요일은 물론이고, 학과 역시 어느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특히 학부제는 현재 대학생들의 학교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약화시키는 제도다.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소속감은 집단행동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10대에 비해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약한 20대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2008년 촛불 현상에 대해 분석할 때 사회 통합도가 좋은 참고가 된다면, 다른 사회 현상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결사체는 정치 참여(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사체에는 종교도 들어간다. 그래서 종교인 비율 또한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20대 여성의 사회통합도가 20대 남성의 사회통합도보다 높음을 밝혀주는 구체적인 통계들을 보자.


먼저 자살률의 경우 남성의 자살이 여성의 자살보다 2배 이상 높다. 그런데 자료를 보면 20대에서는 2배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20대 남성과 여성 21.5:13.2). 그러나 자살률 통계의 특성을 보면 연령이 높을수록 자살률이 늘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뒤르켐의 자살론에서도 지적됐고, 신체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상하지 않다. 20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평균보다 낮은 격차를 보이지만 연령 효과가 가미될수록 이 격차는 벌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 있게 보는 수치는 20대 남자와 여자의 자살률인데, 이에 있어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경우, 다른 세대의 자살률이 감소세인 데 반해 증가세다.


「자살률 줄어드는데 1020세대만 왜 늘까」, 최기영, 국민일보, 2018-05-18, http://m.kmib.co.kr/view.asp?arcid=0923950858#RedyAi


또한 2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인데, 그 이유로 낮은 취업률이 지목된다(참고로 이는 10~ 30대가 마찬가지다).


「20대 자살률 유독 높은 이유…한국사회는 그들에게 가혹하다」, 박상휘, 뉴스1, 2019-06-12, http://news1.kr/articles/?3642818

“우리나라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순위는 자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10~30대가 위험하다…자살률 가장 높아」,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2018-09-19, http://www.mind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4


치열한 취업 경쟁으로 인한 소외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취업 경쟁에서 모두가 적인 ‘원자화된 개인’이 사회 통합도가 낮을 거라는 분석과 일치한다.

결사체는 정치 참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결사체의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NGO 즉 비영리법인일 것이다.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비영리법인 취업률은 21.9%로 9.4%인 남성보다 2배 이상 높다(2017.12.31. 기준). 같은 조사에서 남성의 대기업 취업은 12.5%인데 비해 여성은 7.1%다.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보다 비영리법인에 취업한 사람이 더 정치 참여를 많이 할 거라는 건 당연하다. 즉 취업 시장에서 여성이 더 낮은 위치를 점하고 있더라도, 여성의 사회 통합도가 더 높으며 정치 참여도 많이 한다는 사실은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연결되는 것이다.

곰탕집 시위(성추행 사건에 대한 무고를 주장) 같은 소위 안티 페미니즘 시위로 여겨질 수 있는 시위는 100명을 겨우 넘는 데 비해, 혜화역 시위 참가자는 수만 명에 이르는 등 남성이 주로 참가하는 시위와 여성이 참가하는 시위의 집회 조직도는 큰 차이가 난다.


「‘곰탕집 성추행 판결 규탄’ 당당위 첫 시위엔 100여명 참석」, 정은혜, 중앙일보, 2018-10-27, https://news.joins.com/article/23070646

「“곰탕집 사건 억울해” 120명 참가한 당당위 3차 시위 (사진)」, 박송이, 위키트리, 2019-01-13, https://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396177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3차 혜화역 시위에 6만명 모였다」, 신민정, 한겨레, 2018-07-07,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2321.html


그리고 남성학이라는 학문이 있음에도(이 학문은 여성학과 적대적인 학문은 아니다) 여성학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는 점,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등의 말이 있다는 걸 생각할 때도 이러한 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종교의 경우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 8장 신여성에 따르면 19세기부터 여성 종교인이 급격히 많아졌다. 종교의 위기 앞에서 천주교는 여성 성인(마더 테레사 등)을 성인으로 공인하는 등 상대적으로 여성 친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했다. 사회 곳곳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종교에서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비단 천주교나 19세기에만 해당되는 이유기가 아니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 종교통계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종교인 비율은 48.4%로 39.4%인 남성보다 많다. 이 격차는 과거에 비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그리고 종교인 비율 자체는 양 성별 모두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종교 또한 정치 참여도에 영향을 미치는 결사체로,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정치 참여도가 높다. 이와 관해 중앙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 서찬석이 2018년 6월 1일 “종교는 인민의 아편인가? 종교적 믿음과 활동이 정치 참여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라는 강연을 발표하면서 종교와 정치 활동 간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조사한 바가 있다. 아쉽게도 그는 연구 결과를 아직 문헌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향후 발표가 될 경우 참고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하에 언급해둔다.

마지막으로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 2018년 자료에 의하면 20대 후반 여성 고용률은 69.6%로 67.9%인 20대 후반 남성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러한 수치는 점점 좁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20대 여성이 20대 남성보다 경제 활동을 더 활발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많다. 다른 수치들에서는 20대 남성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한 건 20대 여성이라는 집단이 과거의 20대 여성에 비해 점점 경제 활동이 많아지고 있는 집단이라면, 20대 남성은 (상대적으로) 많아지지 않고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에서의 격차는 존재하기 때문에 이는 2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 활동 등을 통해 정치적 의사 표현을 표출하고 결집하는 요인이 된다. 즉 이 또한 20대 여성의 사회 통합도와 정치 참여도가 높아지는 한 요인이 된다.


그런데 많은 20대 여성들은 여성의 사회 통합도가 더 높다는 주장을 불편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것이 본 주제는 아니어서 이에 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하진 않았기 때문에 수치를 제시할 순 없지만 필자가 이 주장을 개진했을 때의 반응을 보면 20대 남성이 쉽게 받아들이는 데 비해 20대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여성의 사회 통합도가 높다는 말이, 여성이 권력이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주장으로 들리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본 글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이 여성의 사회 통합도가 높다는 건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는 주장과 대치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가 여러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 통합도가 더 높다는 주장은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일본의 유명한 페미니스트 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치즈코는 “남성 동성사회는 있지만 여성 동성사회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여성 동성사회도 있다던 세지윅의 의견을 치즈코가 수정한 것이다.

물론 치즈코의 주장에는 긍정적인 점이 있다. 그는 사회의 가부장적 문제를 꼬집은 것이다. 앞에서 여성의 시민단체 취업률이 높다고 제시했는데, 거기에도 유리천장은 있다. 기업들 대부분에도 유리천장이, 나아지고 있다곤 하나 극심한 게 사실이다. 특히 기성 세대의 경우 심하다. 치즈코의 주장은 이것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컨대 이런 식으로 사회의 자원이 남성에게 쏠려 있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치즈코의 주장은 ‘여성들간의 연대’를 과소평가하게 되는 단점이 있다. 이를 ‘비관적 구조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부아르가 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들은 분명 일견 통찰력이 있지만 여성의 주체적 실천까지 담아내서 사회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페미니즘이 문제인 게 아니라, 젊은 남성에게 페미니즘 같은 것이 없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을 이간질하는 담론에 맞서는 게 필요하다.


참고 문헌

1. 『공정하지 않다』, 박원익ㆍ조윤호, 지와인, 2019.

2. 『제국의 시대』, 에릭 홉스봄, 한길사, 1998(1987년 미국에서 초판), 김동택 옮김.

3. 『미국의 민주주의 1, 2』 알렉시 드 토크빌, 한길사, 1997(1835), 임효선ㆍ박지동 공역.

4.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에밀 뒤르켐, 청아, 2008(1897), 이시형 옮김.

5.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은행나무, 2016, 나일등 옮김.

6. 《2008년 촛불 현상에 대한 세대사회학적 고찰》, 전상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현대정치연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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