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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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DIRECTOR · WRITER: 힐쉬베르거, 피터 애덤슨, 스탠퍼드 대학교

BOOK / MOVIE / ETC: 서양철학사

SCORE ★★★★★

REVIEW:


좀 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중세에 가서 철학의 메인 과목으로 재편성된다.


형이상학엔 Ontologia - 존재론이 대부분 + Theologia - 신학 일부로 구성되어있는데 Ontologia 자체가 Theologia를 설명하기 위한 전 작업이다.


중세엔 Ontologia를 Ontologia Generalis - 일반 존재론으로, Theologia를 Ontologia Specialis - 특수 존재론으로 재편성했다. 



교육자에 대한 사담



이쯤에서 잠깐 멈추고 교육자에 대한 사담을 몇 줄 적어본다. 형이상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몇가지 추가적인 책이랑 강의자가 진행하는 유투브 동영상을 참고했다. 


상당히 언짢은 부분이 있었다. 몇 서적과 강의의 경우 철저한 무신론자가 만든것으로 신학 자체를 어리광으로 설명해놓았다. 


신학의 발전 과정을 서술하면서 


1. 유대인은 참 불쌍한 인종이었고 정신적 승리를 위해 유대교를 만들었으며 억지로 예수를 자신들의 종교에 끌어들인 것으로 서술


2. 아우구스티누스는 '아 됐고 신이 만들었다고 하자 그냥!' 이런 대답을 끌어내려고 철학과 신학을 합쳤다고 서술


3. 형이상학은 그냥 난잡한 담론으로 존재론이 대부분, 신학이 일부인데 중세엔 신학을 갑자기 크게 부풀려버렸다 라고 서술


정보 전달에 있어서 사견이 들어가며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경우였다. 진짜 깜짝놀랬다. 직접 원문을 읽으면서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면 저걸 그대로 흡수했겠지.




암튼 다시 돌아가서 형이상학은 제 1 철학이라고도 불린다. 제 1철학이란 가장 먼저 연구해야 하는 분야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장 근본적이거나 가장 높은 수준의 일반성을 가지는 문제들과 관련한 철학을 의미한다.



형이상학자의 탐구 방법



자연과학자의 탐구 방법 :

사물을 자연 법칙에 종속된 것으로 곧 움직이고 변화를 겪는 것으로 연구한다. 물질적이며 변화하는 대상을 공부한다.


수학자의 탐구 방법 :

사물을 셀 수 있고 잴 수 있는 것으로 연구한다. 변화하지 않아도 독립되지 않는 대상을 연구한다.


*그렇다면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존재할 여지가 남는다. 그것이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자의 탐구 방법 :

사물을 더욱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연구한다.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원리와 원인을 연구한다.



제 1 원인을 도출하는 과정



본질을 도출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질료는 실체에 속하며 실체는 본질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단어다. 문학 연구회 때 아무도 이거 몰랐지? 알았으면 설명해줬을거 아니야. 흥!


아리스토텔레스는 A라는 존재가 질료와 형상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 복합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철학서엔 질료형상 복합체라는 어려운 말로 나온다.


질료 : 재료

실체 : 형상


사물의 본질이 뭘까 ?라는 질문은 나무 탁자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라고 바꿔 물어볼 수 있겠다. 문득 드는 생각은 '나무'가 아닐까 싶다. 본질은 '나무 탁자'라는 이미지이다. 


'나무'는 질료 (재료) 이고 '나무 탁자'는 형상 (실체) 이다. 질료 (재료) 가 대리석으로 바뀌면 '대리석 탁자'가 된다. 따라서 질료 (재료) 는 본질일 수 없고, 다른 무언가로 바뀔 가능성이 잠재되어있다.


이걸 두고 일본인들은 '잠재태'라고 불렀다. 질료 = 잠재태


'나무'라는 재료가 '나무 탁자'가 되려면 해당 이미지 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무 탁자'는 '나무'가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나무 탁자'라는 실체가 된다.


따라서 질료 (재료) 는 형상이 입혀졌을 때 실체가 됨으로 형상이 질료보다 먼저인 개념이고 A라는 존재의 본질이다.


어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라는 말에는 모든 대상이 질료 (재료)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걸 두고 일본인들은 '현실태' 라고 불렀다. 형상 = 현실태


이게 존재론 내용의 일부이다. 존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원인을 하나씩 파고들면 존재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해 존재론을 적었다.


+@로 목적론까지 이어보자면


동물은 시각을 갖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라 보기 위해 시각을 갖는다. 이렇듯 동물의 신체 각 부분들은 개별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것의 총합인 동물 A의 존재 목적은 따로 있다.


만약 여기서 동물의 목적은 없다. 생존이다라고 말한다면. 현실판으로 이런 말과 같게 된다.


자동차의 모든 부품들은 자동차의 목적을 위해 기능한다. 최종적으로 부품들이 다 모여서 자동차가 됐는데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이다. 자동차는 왜 있냐? 여기에 대답할 수 없게 된다.



독립적인, 영원한 존재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실체를 지시해야 한다. 무모순율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무모순율에 답할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증명을 제시하면 그 증명은 무모순율을 전제로 한다. 


믿음은 곧 주장으로 이어지고 주장은 믿음에 대한 증명이기 때문에 무모순율을 전제로 한다. 형이상학은 이와 관련해 대답할 수 없다. 


위에 적었듯 형이상학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것을 연구한다. 일반 존재가 아닌 특수 존재로서 모든 존재의 본질인 '형상'의 제 1 원인을 추적한다.


'형상'은 독립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을 위에서 증명했다. 그럼 이 형상의 근본 원리는 뭘까? 라는 질문만 남는다.


형상의 근본 원리는 질료 (재료)로부터 독립되고 영원한 것이어야 존재 할 수 있다. 그 자체로 독립되고 영원한 존재로부터 독립적이고 변치 않는 '형상'이 파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플라톤의 이데아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이성적인 논리전개를 통해 플라톤을 부정하면서 시작했지만 결국 플라톤에게로 돌아갔다. 나중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학과 철학을 통합할 때도 같은 류의 논리전개를 펼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을 신 플라톤학파 라고 부른다. 우리 451 회원 중 신학 전공생들은 모두 신플라톤주의자인 것이다. 


암튼 이건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신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신에게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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