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기준과 질서에 의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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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걸리버 여행기

DIRECTOR · WRITER: 조나단 스위프트

BOOK / MOVIE / ETC: 기행문 형식의 문학

SCORE ★★★★★

REVIEW:


기준과 질서에 의문을 던진다.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가 만들었을까? 

300년 전부터, 아니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제기된 이 의문은 여전히 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걸리버 여행기는 ‘상대적’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소인국에서 걸리버는 Somebody였다. 누구보다 힘 있는 자로서 그 세계 전체를 요동치게 한다. 

거인국에서는 자신의 몸 하나조차 지키기 힘든 Nobody, 광대로서 살아간다. 

라퓨타에선 학자들을 비웃지만 

럭낵에 가서는 자신의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좁디좁은 식견을 보인다. 

말의 나라에서 그는 인류 전체를 비아냥대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자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는 건 걸리버 자신이었다. 


한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세계 속에서 발버둥 치는 존재인가? 얼마나 상대적인가? 

이런 작은 세계들이 모여 국가가 되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작은 세계들이 만든 작은 기준과 질서들이 들어선다. 

이렇다 보니 혜택을 입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나뉘고 기준과 기준 사이의 충돌은 불가피하게 지속된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3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걸리버 여행기에서 최순실과 조국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이런 인간의 필연적인 운명 때문이 아닐까.


마법 같은 일이 하나 있다.

모두 같이 알몸으로 태어나지만 변호사라는 옷을 입으면 거짓도 진실로 바꿔 말할 수 있게 되고 

전문가라는 옷을 입으면 모든 탐구하는 학문의 영원한 적이 된다. 

적어도 그렇게 해도 되고,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리들에 적용되는 기준은 어디에서 왔고 그렇게 굴러가는 사회의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이 또한 작은 세계가 만든 작은 질서가 아닐까. 

마치 악몽에서 방금 깼을 때처럼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이 무작정 튀어나온다. 


나와 '다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자.

사회 속 기준과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자.

어떤 모습으로든 그것은 관리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자기가 태어난 고장에 대한 정과 편애에 좌우되지 않을 사람이 실로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온전한 사람이라도 실로 그렇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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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책을 덮고 책에 나오는 결말 대신 영국에 돌아가 나라를 바꾸려 노력한 걸리버를 상상해보았다. 

아마 나라를 바꾸려다 미치거나 사형당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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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걸리버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걸리버는 한국에 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다양성의 존중을 향한 노력에 굉장히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까?

동시에 학문의 영원한 적을 양성하는 추악한 나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문맹이 없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똑똑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세상의 모든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한글에 뿅 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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