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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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마더 ( 2009 )

DIRECTOR · WRITER: 봉준호

BOOK / MOVIE / ETC: MOVIE

SCORE ★★★★

REVIEW:


0. 살인자의 엄마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저번 달 18일에 확인되었다. 그리고 용의자 이춘재가 어제인 10월 1일에 자백을 함으로써 해당 사건의 진범임을 밝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 살인의 추억 >으로 더욱 유명해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그 수법의 잔인함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기에 진범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마침내 이루어진 정의구현에 대한 희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와 그를 잘 아는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이춘재를 옹호하고 심지어 살인을 당한 피해자를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이는 다시 사람들의 분노를 이끌었다. 필자 역시 이춘재의 어머니와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반응이 몹시 흥미로웠다. 왜 저들은 살인자를 옹호하는가? 증거가 명백하고 사실 관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저들은 그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도대체 왜?
 살인자를 옹호하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행위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해도 바뀔 수 없지만 행위에 대한 원인과 동기는 어떠한 명분을 드냐에 따라 정당화가 가능하다. 전쟁에서의 살인이 그렇다. 하지만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어떤가? 이는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며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다. 내 관점에서 이것은 광기이다. 광기,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어떻게든 설명한다.


1. 영화 < 마더 >


" 사실은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 " _ 혜자

 영화 < 마더 >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 >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역작이다. 내용의 흐름은 단순하게 이어진다. 아들 '도준'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자 엄마 '혜자'가 아들의 혐의를 풀기위해 노력한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스릴러 영화의 서스펜스나 결말의 충격적인 반전 그리고 '혜자'의 감정 변화는 단순한 내용을 결코 단순하지 않게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이해하기에 깔끔하고 매끄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철학과 그것을 한 장면에 담아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영화가 담은 철학과 주제를 얘기하기 전에 결말을 알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은 아들 '도준'이다. 그리고 엄마 '혜자'는 이 사실을 깨닫자 유일한 목격자를 살인하고 다른 용의자가 진범으로 확정되는 것에 침묵한다. 한마디로 일그러진 모정을 가진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엄마 '혜자'는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아주 약한 계층에 속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며 부양해야할 식구인 '도준'이 있다. 직업 역시 한의원에서 보조 업무를 맡은 듯 하다. 이미 아들이 장성했을 만큼 나이를 먹은 '혜자'의 몸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많은 일의 장애물이 된다. 영화에서도 내내 그녀의 약하고 여린 모습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장례식에 찾아가 아들의 누명을 호소한다거나 '진태'의 집에 잠입하여 증거를 수집하고 유일한 사건의 목격자를 살인하는 등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없을만한 일을 홀로 뚝딱 해낸다. 무엇이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 답을 광기에서 찾았다.


2. 광기


" 아니야!

절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 쓰레기야!

울 아들 발톱의 때만도 못한 새끼가. " _ 혜자

 광기란 무엇인가? 광기는 미친 증세나 기미이다. 그러나 내게는 확 와닿지 않는 뜻이다. 미쳤다는게 뭔데? 좀 애매하지 않은가? 영화 < 다크나이트 >의 조커가 추구하는 혼돈에 대한 광기와 영화 < 위플래시 >의 앤드류가 추구하는 성공에 대한 광기를 모두 같은 의미로 미쳤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래서 광기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광기는 광기다. 광기란 광기며 광기는 진정한 광기와 광기. 그럼 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광기? ...

 이렇게 해석할 것이라 예상했는가? 아니길 바란다. 내가 정의한 광기는 예상한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상한 범주는 아주 넓다. 한낱 개인의 범주가 아니다. 내가 생각 못해도 다른 누구가 생각했다면 그것은 예상 안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다면? 내게 그것은 광기이다.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한 행위의 예상 범주는 그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달라진다. 많은 일을 수월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예상의 폭이 넓어진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이면 범주는 실만큼 가늘어진다. 결론적으로 강한 광기는 약한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혜자'가 그렇다. 그녀의 힘없는 소시민적 모습은 광기에 취한 그녀의 또 다른 모습과 더욱 대비된다. 만약 영화에서 '진태'가 고물상 아저씨를 죽였다면 어땠을까? 확신하지만 '혜자'가 죽였을 때의 충격에 비해 그 정도가 아주 약했을 것이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머니가 되면 그 이름이 가지는 거룩한 무게만큼 책임과 할 일이 많아진다. 그만큼 몸은 쇠약해지고 세월은 빨리 흐르게 된다. 모든 어머니는 단지 여자일 때보다 약해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녀들은 더욱 강해진다. 리쌍의 <발레리노>엔 이런 가사가 있다. '무언가를 지켜야하는건 그것에 지쳐도 미쳐야하는 것'. '혜자'도 '도준'에게 지쳤었다. '도준'이 5살 때 동반 자살을 시도했던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을 지키기로 결심했고 그녀는 미쳐야만 했다.


3.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웃고 있었다


 " 나쁜 일, 끔찍한 일, 속병 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거 깨끗하게 풀어주는 침 자리가 있거든요. " _ 혜자

 '혜자'가 추구하는 광기는 믿음에 대한 광기이다. 그녀는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자 하는 것을 믿는다. 대표적으로 '도준'의 혐의에 대한 믿음이 그렇다. 또 '진태'가 나쁜 놈일 것이라고 생각해 집에 무단침입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장면과 피해자의 할머니가 피해자의 휴대폰을 팔았다고 한 것을 부정하며 거짓말이라고 확신하는 장면에서 그러한 광기를 느낄 수 있다. 그녀에게 믿음이란 '맞아'보다 '아니야'로 끝맺는다.

 영화에 나오는 피해자 '문아정'의 살인 사건을 다시 되짚어 보자. 피해자는 건물 옥상에 빨래처럼 널려있었고 사건 현장에서는 '도준'의 이름이 적힌 골프공이 나왔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 '도준'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있으며 사건이 일어나기 전 술집에서 성적 욕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만취했던 '도준'에 대한 정황 증거도 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 대한 '도준'의 확실한 알리바이가 없다. 그렇다면 '도준'의 무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있는가? 영화에서도 그의 변호사가 포기했다시피 그러한 증거는 없다. 그 변호사가 매우 유능한 변호사라는 설정에도 말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도준'은 충분히 용의자로서 지목될 수 있고 어쩌면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리가 없다. 하지만 '혜자'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근거는 없지만 말이다. 영화에서 그녀가 믿는 것은 단 하나, '우리 아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이다.


4.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 너 부모님은 계시니? 엄마 없어? " _ 혜자
" 울지마라 " _종팔

 어머니, 엄마. 이 단어가 가지는 울림엔 끝이 없다.

 영화 말미에 '혜자'는 '도준'의 죄를 덮어 쓰게 될 '종팔'을 찾아 간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에게 엄마가 있는지 묻는다. 그가 없다고 하자 그녀는 오열한다. 그녀는 그를 위해 울어주었다. 진심을 담아. 그 어떤 가식과 위선도 그 울음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엔딩 장면에서는 '혜자'가 효도 관광을 떠나기위해 탄 버스에서 다른 이들과 춤을 추며 끝난다. 저 장면에서 누가 '혜자'인지는 역광으로 생긴 그림자로 인해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러한 효과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혜자'이기에 그러한 광기의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다. 모든 어머니가 '혜자'일 수 있다.

 엄마는 약했다. 장례식에 찾아가 싸대기를 맞고 '진태'라는 놈한테 돈이나 뜯기고 변호사가 무시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종장에서는 모든 것을 잊기위해 침에 의존한다.
 엄마는 강했다. 장례식에 찾아가고 '진태'를 조사하고 변호사 사무실에 처들어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무엇이라도 하려고 했다. 종장에서는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음에도 춤을 추고 있다.


5. 끝내는 말


 사실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이 영화가 범죄 스릴러 장르였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내용도 장르의 특색에 맞게 잘 만들었다. 근데 왠걸, 볼 수록 느끼는 감정이란 평소 범죄 스릴러 영화를 봤을 때의 긴장감이나 후련함이 아니라 '혜자'에게 느끼는 연민과 감동이었다. 특히 엔딩 장면이 끝나고 떠오르는 단어란 '엄마'뿐이 었다. 그 단어와 '혜자'의 감정 변화를 통해 겪은 감동은 신파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과는 사뭇 다르게 잊고 있었거나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던 것으로부터 오는 감동이었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범인을 '도준'이라고 염두했다. 뭐 별 다른 추리력이 있어서는 아니고 단지 앞서 언급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진범 이춘재의 어머니가 했던 인터뷰가 생각나서이다. 아들의 혐의를 완전 부정하고 혐의를 풀려는 '혜자'의 모습이 이춘재의 어머니와 겹쳐보였다. 그래서 정말 '도준'이 범인이라면 이춘재의 어머니가 '혜자'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모든 어머니는 어쨌든 어머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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