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제국주의 속 막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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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버마시절

DIRECTOR · WRITER: 조지 오웰

BOOK / MOVIE / ETC: BOOK

SCORE ★★★

REVIEW:

「버마시절」은 조지 오웰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술술 읽혔다. 중학생 때 「동물농장」을 처음 읽었을 때 이게 뭐야? 이런 느낌, 「1984」를 스물한 살에 읽었을 땐 ????? 이런 느낌이었는데 「버마시절」은 자꾸만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느낌을 줘서 그랬다...

그렇지만 읽고서 느낀 것은 ‘그래서 제국주의랑 무슨 상관?’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어쩌면 조지 오웰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약간의 실망으로 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플로리가 사랑에 실패하고 죽음을 선택한 게 꼭 제국주의 때문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플로리가 엘리자베스를 20년 뒤 영국에서 만났다고 하면 둘은 서로 너무너무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번에 골인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고 내가 봤을 땐 둘은 그냥 안 맞는 것 같던데.... 일단 가치관이 서로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러니까 통하는 게 없는 느낌이었다. 뭐, 작품해설에서는 정치소설의 특징으로 개인의 이상이 정치를 통해 실현되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절되고 그 결과 개인이 소외되고 희생되는 모습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대체로 주인공은 희생 아니면 패배라는 결론을 맞으며, 이 소설에서 역시 제국주의와 플로리 사이에는 화해나 타협이 아닌 부조화와 갈등이 가득 차 결국 그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평론가 분들의 말씀을 읽고 조지 오웰 소설의 특징들을 알 수 있어 좋았지만, 나는 「버마시절」의 주인공 플로리가 그런 특징 때문에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평론가님 말씀을 듣고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나는 나만의 생각을 가질거다! 플로리의 죽음은 안타까웠지만, 그리고 꼭 죽어야 했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제국주의와의 갈등이 그를 죽음으로 몬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꼈고, 그로 인해 엘리자베스의 경멸을 얻은 좌절감을 마음 약한 플로리는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 혼자 죽지 않고 자신의 개까지 죽인 걸 보면 그 사람이 굉장히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문으로 자살을 선택한 영국인의 개를 누가 상냥하게 돌봐줄까? 잡아 먹지만 않아도 감지덕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기가 데리고 가려고 했던 마음 여린 플로리. 항상 얼굴의 모반을 가리고 싶어 했던 플로리. 그런데 자신의 과오? 혹은 치부?라고 여겼던 마 홀라 메이의 존재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니 그가 느꼈을 감정이 조금은 이해도 된다. 우포킨(드디어 생각났다!ㅎㅎ)처럼 뻔뻔한 성격도 아닌 사람이었으니까... 이런 플로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토론 때 했던 것도 재밌었다. 사랑에는 ‘비굴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고.


「버마시절」을 다 읽고 「동물농장:우화 이야기」을 다시 읽었다. 출판사는 펭귄클래식 코리아였는데 뒤에 부록으로 「동물농장:우화 이야기」를 조지 오웰이 출판 거절을 당한 뒤에 썼던 글이 실려 있었다.

제목은 언론의 자유.

인상깊었던 구절을 공유하려고 합니당.

- 여기에 수반된 쟁점은 지극히 단순하다. 아무리 인기가 없더라도, 심지어는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모든 의견이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거의 모든 영국의 지성인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스탈린을 공격하는 것이 어떤가? 그것이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고 물으면 ‘아니다.’라는 대답이 자주 나올 것이다. 그러한 겨우 현재의 관행은 도전받게 된다. 이러한 논리로 자유로운 언론의 원칙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요구한다고 해서 절대적인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조직이 유지되는 한 어느 정도 검열은 항상 있어야 하고 어쩄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자유는 ‘다른 동료들을 위한 자유’이다. 동일한 원칙이 볼테르가 이야기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에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내용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내 목숨을 걸고 옹호할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서구 문명사회의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인 지적인 자유가 어떤 의미를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이는 발표하는 의견이 어떠한 경우에도 공동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진실이라고 믿는 바를 말하고 출판할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민주주의 적을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붕괴시켜야 한다. 그러면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그 적은 항상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상을 유포시켜 민주주의를 ‘객관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도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모든 독립적인 사상의 파괴를 포함한다. (중략) 이 순간에 연주되고 있는 음악을 좋아하든 안 하든, 축음기 같이 판에 박힌 정신이 바로 우리의 적이다.

-자유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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