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맑스주의 역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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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맑스주의 역사 강의

DIRECTOR · WRITER: 한병철

BOOK / MOVIE / ETC: 인문교양

SCORE ★★★★★

REVIEW:


맑스주의 역사 강의 1~ 5강


임정빈


발제의 특징 :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토론거리를 담으면서, 발제자 의견을 첨부한 부분도 있다. 저자와 생각이 다른 부분을 중심으로, 맑스주의 내에서 어떤 논쟁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며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무조건 내 생각이 옳고 저자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책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요약하지 않고 다른 정보를 결합한 부분도 있다. 발제문에 없어도 책과 관련해 토론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유롭게 말씀하기 바란다.


이 책에 대한 설명 : 2010년에 나온 책. 여기저기서 교과서적으로 쓰인다. 저자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 역사에서 좀 더 큰 영향력을 가졌던 맑스주의 해석들을 자기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소개하려 애썼다고 한다. 노력은 했지만 저자가 마오주의자여서 그런지 특히 마오쩌둥에 대한 고평가가 두드러지는 부분은 있다. 저자는 80년대 운동권이다. 지금은 사라진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이란 곳을 오랫동안 운영했으며 이 책은 거기서 한 강의 일부의 녹취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유튜브에는 동명의 이름으로 저자가 올린, 이 책에 관한 수십 개의 강의가 있다.


용어 정리

사회주의 : 원래는 정치철학에서의 용어. 개인주의의 반대말. 나중에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의미하는 말로 바뀌었으며, 사회과학적으로는 70여가지에 달하는 다른 뜻이 있다.

공산주의 : Communism. 코뮨은 공동체라는 뜻. 직역하면 공동체주읜데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공동체주의랑은 다르다. 유럽에서 중세에 수도원 운동이 이는데 이게 지금 생각하는 공산주의 개념이랑 비슷하다. 교회가 재산을 소유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맑스주의에서는 사회주의랑 공산주의를 단어만 다르지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맑스주의 : 이름 뒤에 주의를 쓰는 건 그 사람의 사상을 중요히 여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런 게 개인숭배라고 욕을 먹었다. 맑스가 자기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얘기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맑스주의를 좋은 말처럼 쓰기 시작한 건 카우츠키가 최초다.

맑스-레닌주의 : 스탈린이 만든 말. 사실은 스탈린주의다. 그래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레닌주의 혹은 볼셰비키-레닌주의라는 말을 선호한다.

자유주의 : 자유주의에서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다. 맑스주의자들은 자유주의를 부르주아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자유주의에서 중요한 건 소유권인데 개인이 소유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자유권이다. 그래서 1세대 인권이 자유권이라 불린다(2세대 인권은 사회권, 3세대는 연대권).

프랑스 혁명에서 자코뱅파(로베스피에르가 지도자)와 지롱드파가 각각 좌파, 우파로 알려져 있는데 둘 다 소유권을 인정했다. 차이가 있다면 로베스피에르는 생존권을 위해 식량 값의 상승을 제한하는 최고가격제 등을 주장했다. 더 급진적인 좌파인 에베르파는 생존권이 소유권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고, 지롱드파는 생존권에 대해서 반대했다. 자코뱅파가 에베르파를 제거한 다음 지롱드파가 자코뱅파를 제거했다. 그 후 자코뱅 좌파가 혁명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돼서 처형당하는데 주동자가 바뵈프다. 소수에 의한 음모를 꾸미는 이 노선이 후에 블랑키라는 사람에게 계승된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비 : 사회주의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는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주의랑은 다르다. 맑스에게 있어 중요한 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다. 공산주의는 개인의 발전이 동시에 다른 사람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적 관계를 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관계는 한 개인의 욕망이 다른 개인에게 고통을 주게 한다. 한 개인이 즐겁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사회적 관계가 자본주의적 관계다. 모든 계급 사회의 관계라는 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욕망이 충족되어도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같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자가 분명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모호하죠.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도 빨갱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예요? 그건 아니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 같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 같아요. 물론 한국에는 그렇다고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그럼 김일성은 어떻습니까? 공산주의자일까요 아닐까요? 김정일은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도 그걸 가지고 아직도 싸우죠. 이 예도 역시 공산주의가 뭐냐는 문제는 이론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노선의 대립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베트남독립의 아버지 호치민은 공산주의자일까요?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논쟁거리입니다. 호치민 노선을 철저한 공산주의로 본다면 오늘날 베트남은 호치민 노선에 대한 배신이 되겠죠. 반대로 오늘날 베트남의 급속한 자본주의화가 베트남 공산당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에 크게 문제제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오쩌둥 아시죠? 이 사람은 공산주의자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습니다. 맑스주의 진영 내에서 마오가 공산주의자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학자들끼리 이론적 평가를 놓고 싸운 정도가 아닙니다. 마오는 스탈린이 죽은 뒤 집권한 흐루쇼프를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저자는 스탈린이 공산주의자가 분명하다고 얘기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스탈린이 적어도 초기에 열성적인 활동가였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본인은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1928년부터 스탈린주의 체제 하에서의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였냐고 하면, 거기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위에서 열거된 인물 중에 맑스, 엥겔스, 레닌을 제외하면 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 북한 같은 나라들이 지금도 자기들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주장에 불과할 뿐이지 실질적으로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박정희는 자기가 권력을 잡았던 시기의 한국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했지만 요새 그걸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민주주의라고 주장하지만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는 존재한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다. 요새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사회주의가 상당히 각광받는 이념이었다. 당연히 사회주의를 겉으로 내세우는 계급 사회 국가가 생길 수 있는 토양이 됐다. 따지고 보면 자기가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던 나라들이 다 사회주의였다고 생각하는 게 비상식적이다. 예를 들어 북한은 인민들이 굶어 죽어도 무기를 개발하고 탈북민이 넘쳐나고 3대 세습과 숙청이 횡행하는 곳인데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라들이 사회주의로 여겨지게 된 건 첫째로 사회주의에 대해 잘 몰라서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 사회주의라고 불리는 이상한 국가’들이 사회주의가 맞으며 사회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게 자기 체제를 옹호하는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반공주의를 뜯어보면 이상한 것이 ‘현실 사회주의’란 곳들을 사회주의라고 욕하다가도 사회주의를 하지 않는다고 욕한다. 나는 북한 같은 나라들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인민들을 착취해서 관료 계급을 배불리는 ‘국가 자본주의’ 사회라고 본다.


공산주의에 대한 아주 잘못된 통념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는 다 같이 가난하게 사는 것, 또는 금욕주의라는 생각입니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시스템이고 공산주의는 욕망을 억제해서 없는 것을 서로 나눠 갖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래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물론 복고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존재하지만 맑스주의적 전통에는 그런 게 없어요. 자본주의나 맑스의 공산주의나 똑같이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을 역사의 진보에서 핵심적 요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맑스주의는 금욕주의보다 쾌락주의에 훨씬 가까워요.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와 대부분의 사회주의ㆍ공산주의는 진보를 옹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진보ㆍ보수라는 틀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진보와 사회주의ㆍ공산주의를 유사한 경향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상당히 혼란스럽겠죠.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 용어법들이 더 엉망진창으로 되어 버립니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후 소련은 다시 자본주의로 전환됩니다. 이때 구소련 체제에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진보라고 불렀습니다. 그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자들을 보수라고 부르고 자기들을 진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하니 이제 용어법이 반대가 된 것입니다. 급속한 자본주의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보주의자가 되었고, 여전히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보수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공산주의 옹호란자들이 우파가 되었고,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좌파라고 불렸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자와 생각이 다른 게 소련을 사회주의로 보지 않기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우파가 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틀렸다고 생각한다. 진보ㆍ보수 개념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긴 동의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1강 자본주의의 발전과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


맑스ㆍ엥겔스가 분명히 자기들과는 종류가 다른 사회주의ㆍ공산주의라고 생각하고 분류했던 흐름들이 맑스ㆍ엥겔스 당시나 사후에 맑스주의자를 표방했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맑스주의 진영 내에서도 맑스주의와는 다른 기원을 갖는 사회주의ㆍ공산주의가 존재하게 됩니다. 맑스주의자들 간의 노선차이가 복잡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맑스의 사상과는 대립되는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조류가 사후에 맑스주의 내부로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근대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정치와 경제의 분리입니다. ㆍㆍㆍ 신분이 없어지니까 정치적으로는 평등해지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불평등합니다.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의 분리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게 이런 현상입니다. 그래서 근대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정치이념을 가진 사람들도 정치에 초점을 맞춰서 사회의 변혁을 생각하는 노선과 경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노선으로 크게 나누어졌습니다.

ㆍㆍㆍ맑스에게 영향을 준 공산주의자ㆍ사회주의자 중에서 정치적 노선에 해당하는 사람은 바로 프랑수아 바뵈프와 루이 블랑키입니다. ㆍㆍㆍ 이 사람들이 생각했던 정치혁명은 정치권력의 장악입니다. ㆍㆍㆍ 맑스에게 혁명의 주체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아니라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됩니다. 또 혁명이 일회적 사전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점도 맑스의 새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ㆍㆍㆍ 블랑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생각은, 국가권력의 장악으로부터 온전한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사회가 실현되기까지는 과도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ㆍㆍㆍ 이 과도기는 바로 소수의 혁명가들과 빈자들이 혁명적인 독재를 하는 기간입니다.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공산주의 사회가 실현될 때까지 혁명적 지식인들이 과도적으로 독재를 수행해야 하는 기간을 설정했다는 게 블랑키의 아주 중요한 공헌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관한 오해

ㆍㆍㆍ독재에 대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가지는 이미지는 아주 나쁜 거죠. 지금 21세기에는 독재가 좋은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도, 겉으로는 결코 그렇게 말 못합니다. 그런데 왜 더 좋은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독재를 하자고 했을까요? 바로 독재 개념이 지금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맑스주의에 대한 아주 중요한 통념 중의 하나가 맑스주의가 독재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맑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주장하잖아요. 그러니까 반공주의자들이 “거봐, 자기 입으로 나쁜 놈들이라고 하는데 뭘 더 얘기해”라고 말한단 말이에요.

ㆍㆍㆍ 이 단어가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쓰인 것은 최근에 와서입니다. 1848년 혁밍기에도 이 단어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결코 아니었고, 민주주의자들의 운동의 한 측면으로 여겨졌습니다. 또 dictatorship에는 평상시의 통치방식과 구별되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동안의 권력사용이라는 의미가 기원에서부터 있었어요. ㆍㆍㆍ 19세기에는 지금 보기에는 이상한 용어,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독재’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지금 보면 용어모순이지만 이것을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통치’라고 읽으면 이해가 됩니다.

ㆍㆍㆍ 러시아혁명 이후에 반공주의자들이 러시아혁명을 비판하기 위해서 dictatorship이라는 용어를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에 주로 의존하는 전제정치’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경제적 노선의 사회주의

생시몽 : 정치의 영역을 경제의 영역으로 환원시켜야. 국가가 소멸. 계획경제를 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푸리에 : 근대 문명 사회에서 빈곤은 풍요로부터 비롯된다. 여성해방에 대한 지대한 관심.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

프루동 : 노동전수익권설. 노동자가 일해서 생산한 가치는 모두 노동자가 가져야 한다. 맑스는 이에 대해 반대했는데 그러면 사회를 재생산할 수 없다는 거다. 일할 수 없는 장애인도 먹고 살아야 하고, 도로도 만들고, 아기도 낳고 키워야 하는데 프루동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2강 맑스ㆍ엥겔스의 초기 사상

소외 : 주체가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아닌 자기와 대립되는 것이 되는 것, 자신의 활동의 산물을 낯설게 느끼고 그것과 분리되고 나아가 적대적 관계를 맺게 되는 것. 자본가에게 이윤을 가져다줄 목적으로 물건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와 노동의 산물 그리고 노동과정이 분리될 수밖에 없다.

변증법 : 형식논리학에 대비되는 논리이자 방법론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것. 한 사물이 무엇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아닐 수도 있고,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봉건제는 항상 봉건제이고 다른 것일 수 없다면, 봉건제 사회가 자본제 사회로 변화하기는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게 변증법이다.

유물론 :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영원한 존재는 없고 구체적인 현실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

인간의 본능 : 인간의 본질은 그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총체)이다.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닌,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게 맑스의 인간관이다.

공산주의관 :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실제로 맑스는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술은 거의 하지 않았다. 어떤 구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것이 실현될 거라 예언하는 걸 공상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폐지하지만 사회적 생산물을 취득할 힘을 누구로부터도 빼앗지 않는다고 했다. 즉 개인적인 소지품인 책, 인형 등 이런 개인적 소유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강 맑스ㆍ엥겔스의 후기 사상


노동가치설 :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며, 이 가치가 상품들이 서로 교환되는 비율을 결정한다는 이론. 이윤의 유일한 원천은 인간의 노동.

잉여가치론 : 자본가들이 아무리 선의를 가지더라도 자본이 자본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윤을 남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된 부가기치 중의 일부만은 노동자에게 주고 임금으로 주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이윤으로 가져가야 한다. 즉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지불하지 않는 부분이 항상 있어야 한다. 착취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에 의한 필연적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생산물의 분배가 아니라 생산의 영역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생산양식을 그대로 두고선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계급 : 저자는 계급이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로 나뉜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의견이 다르다. 계급은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다. 착취를 해야만 지배 계급이고, 착취를 당해야만 피지배 계급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CEO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는데 그럼 피지배 계급인가? 아니다. CEO는 일을 하긴 하지만 다른 노동자들을 관리 감독하며 잉여가치 중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또한 1인 자영업자는 생산 수단을 가지지만 착취를 하지 않기 때문에 중간 계급이다.

국가론 : 맑스 초기의 국가론과 후기의 국가론이 다르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기존의 국가기구를 장악해 사회주의적 조치를 실행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프랑스 내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기존의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난 후에 그것의 성격이나 내용을 변화시켜야만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기존의 국가권력이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형태가 모색되는, 사회주의로 가는 정치적 이행기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다.

평등 : 엄밀히 말하면, 맑스는 평등을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등이 부르주아적 가치라며 경계했다. 맑스는 각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를 주장했는데 예를 들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다른 사람보다 휠체어 하나라도 더 받아야 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필요는 다르다. 맑스는 평등이 아니라 다양성의 증대를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실질적으로 평등하려면 형식적으로 불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4강 제2인터내셔널의 논쟁들(1) -수정주의 논쟁과 총파업 논쟁


수정주의 논쟁 : 수정주의의 출발점은 현실적이고 합법적 틀 안의 온건한 방식으로 투쟁해 지배계급과의 충돌을 피하자는 것. 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수정주의는 이 방식을 일반화한다. 즉 혁명적 실천을 배제하는 것이다. 베른슈타인이 대표적인데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이 향상돼서 생활수준이 높아졌다, 중간계급이 늘어났다, 자본가가 엄청나게 늘어났다(주주를 전부 자본가로 보는 것. 하지만 노동자 혹은 학생도 주식을 하는데 그렇다고 실질적으로 회사를 소유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자본주의 붕괴론을 전제로 한 혁명적 이행 전술은 폐기되고 현실적인 수단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점자본, 신용제도, 교통과 정보망의 발달이 자본주의를 붕괴하지 않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룩셈부르크가 이에 대해 반박하는데 독점자본의 담합은 결국은 전쟁으로 돌아가고(이것이 현실화된 게 세계대전) 신용제도는 투기를 불어볼 뿐이라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은 투기는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곳에서만 일시적으로 생기는 거라고 했지만 현대에도 투기에 의해 사회가 휘청거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총파업 논쟁 : 총파업은 파업이 사회 전체에서 전면적으로 일어나는 것. 맑스는 총파업을 하려면 아주 강력한 조직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은 노동자계급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만약 총파업을 할 정도로 강력한 조직을 갖추면 그때는 총파업을 할 필요 없이 혁명을 하면 된다고 했다. 이게 현실에서는 반증되는데 대중이 자발적으로 총파업을 한다. 결국 한편에서는 조직된 대중의 의식적 고양이 있어야만 총파업이 가능하다고 하고 반대편에서는 그런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아도 총파업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총파업을 반대하는 쪽은 현 단계는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직 아니며, 그랬다가는 반동의 탄압을 초래해서 운동 자체를 파괴할 뿐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 두려움의 원인은 독일 사민당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우경화였다. 독일 사민당은 당원이 수백만이었고 의회에서 제2당이었으며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고생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수전노가 되는 심리였던 것이다. 변절한 사민당 지도자들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과 식민지 보유에 찬성하고 혁명가들을 죽인다.


5강 제2인터내셔널의 논쟁들(2) -반전 논쟁과 식민지 논쟁


반전 논쟁 : 맑스주의자는 원칙적으로 자국 정부의 지배계급의 전쟁 시도에 반대하는 투쟁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방어 전쟁의 논리가 낀다. 러시아에는 노동 운동이 거의 없었으니까 독일에서만 노동자들이 전쟁 반대를 하면, 러시아의 전제정이 독일 노동 운동까지 쓸어버릴 거라고 봤다. 그래서 전쟁 반대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당히 편견에 근거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유럽중심주의적 편견의 한 사례다. 오히려 러시아에서 혁명이 성공해 1차대전의 동부 전선을 종결시켰다.

식민지 논쟁 : 식민지에서 수탈한 이익으로 선진국의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계급에 유화정책을 쓴다. 이로 인해 선진국의 노동자 계급이 온순하게 되는 건데 사민당의 높은 사람들은 이런 이득을 지키려고 갖은 논리를 개발한다. 우선 전자본주의 단계에 있는 식민지 지역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가서 자본주의를 이식시키는 게 역사를 발전시키는 진보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원형이다. 또한 자본주의적 식민화는 너무 야만적이니까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회주의가 개입해야 된다고 했다. 즉 독일은 사민당이 있으니까, 다른 야만적인 나라가 식민지를 못 가지게 하고 대신 독일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식민주의를 옹호하고, 개발된 자원을 식민지에 나눠주지도 않는다. 나중엔 식민지를 갖는 게 권리라고까지 주장했다. 원래 하나였던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이때 처음으로 분리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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