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사랑한다고 사랑만 할 수는 없어서

조회수 1184

TITLE: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DIRECTOR · WRITER: 이누도 잇신 (犬童 一心 )

BOOK / MOVIE / ETC: 영화

SCORE: ★★★☆

REVIEW:


 오늘도 물 한 잔 정도는 마셨겠죠? 맞죠?


  학교 수업 시간에서나 신문, 광고 등의 매체 통해 우리는 물의 중요성을 인지합니다.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 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배울 수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평소 마시는 물은 순수한 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미네랄과 같은 상당수의 불순물이 섞여 있죠. 그렇다고 너무나 많은 불순물이 섞이면 점점 물이라고는 부르기 힘든 어떠한 것으로 변모합니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감히 인간 존재의 가장 큰 특이성을 감정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지구 상 모든 종 중에서 가장 감정의 표현이 뚜렷한 종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죽음을 평생 기억하고 슬퍼하는 개체가 있음과 동시에 한 불쌍한 청년의 죽음으로 전 국가의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분노케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내적 혹은 외적 표출은 인류 사회에 필수불가결적인 요소가 되었고 그 영향이 작거나 크거나에 상관없이 사회를 굴러가게 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의 순수성, 즉 순수한 분노와 순수한 슬픔 그리고 순수한 사랑의 존재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쉽게 생각해보면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물에도 증류수가 존재하듯 순수한 감정도 있을 수 있겠죠. 예를 들어 테레사 수녀님의 헌신이나 세종대왕의 백성을 생각했던 마음이라든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단순하게 말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다른 생각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요 인물들을 통해서요. 아니 어쩌면 그만큼 순수란 존재할 수 없는건가 봅니다. 애초에 감정이란 그런거였던거죠.


 영화는 사실적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간결합니다. 저는 헤밍웨이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문체 역시 간결하고 사실적이지요. 마치 지금 제 문체처럼.


 화려한 소품과 세트, 웅장한 카메라 앵글 결코 평범치 않은 인물들의 설정 또 그러한 결말까지. 대게 헐리우드의 대부분 영화에서 찾을 수 있었던 특징들 입니다. 물론 저 특징들이 영화의 흥행 요소가 되어 관람객과 투자자들을 즐겁게 해줄 때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샷건을 든 사이코패스 살인마, 미래에서 발가벗고 온 로봇 그리고 애초에 태어날 때 부터 초능력자라는 설정들은 저를 피로하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최소한 저 만큼은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한마디로 담백한 영화.

 드라마 장르가 으레 그렇듯이 영화는 소수 인물들을 중점으로 그들 간의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도 4명의 주인공들이 나옵니다. 다리를 쓸 수 없는 쿠미코, 그런 손녀를 매우 부끄러워 하는 그녀의 할머니, 그저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 끝으로 츠네오를 사랑하는 카나에. 무도 현실적이고 평범하죠. 적어도 같은 장르인 <Love actually>의 인물들 보다는요.

 이 리뷰는 인물 중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물 간의 관계 중심이죠. 이야기에서 풀어나가는 그들의 관계를 정리하면 쿠미코 - 할머니, 할머니 - 츠네오, 츠네오 - 카나에, 카나에 -쿠미코 다시 쿠미코 - 츠네오가 됩니다. 리뷰 역시 이 사이에서 알 수 있는 감정을 중점으로 다루었습니다. 내적 갈등까지 포함하면 할머니를 제외한 세 인물에서 뚜렷하게 보입니다만 이 리뷰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소설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뷰 할 기회가 있으면 그 때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계획은 없습니다.


 <쿠미코, 츠네오 - 할머니> 표현이 서툴다는 것도 그만큼 표현해야 할 것이 복잡하기 때문이겠죠?


너는... 주제를 알아야지
넌 몸이 불편하잖아.
몸도 불편한데 조심하고 살아야지

...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게
남들이랑 똑같이 놀려고 해?
천벌 받아!     _할머니, 쿠미고에게

댁같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어. 알겠지?
잘 가쇼. 몸 건강하고.    _할머니, 츠네오에게

 두 대사는 쿠미코 할머니의 감정을 잘 나타냅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녀인 쿠미코를 굉장히 부끄러워합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집에 혼자 산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요. 심지어 낮에는 쿠미코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새벽이나 밤에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외출을 허락할 뿐이지요. 이렇게만 적어 놓으니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는 할머니 같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랫동안 쿠미코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준 인물입니다. 그녀는 손녀를 위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아침마다 산책을 나섰고 또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을 안쓰럽게 여겨 헌 책들을 주워옵니다. 쿠미코가 츠네오에게 배신감을 느껴 아파할 때 그런 그녀에게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위로해준 것 또한 할머니 혼자입니다. 즉, 손녀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로 인한 수치심은 배제할 수 없더라도 쿠미코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사랑이었죠.

 츠네오에게 역시 비슷합니다. 할머니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타인과 비교했을 때 츠네오에게 훨씬 열린 마음으로 대합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본거죠. 자신이 자고 있던 와중에 낯선 인기척이 느껴져 경계하지만 츠네오가 대답하자 쉽게 경계심이 풀립니다. 하지만 츠네오가 쿠미코에게 마음에 아픈 상처를 주자 할머니는 즉시 츠네오를 자신의 집에 더 이상 오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위 할머니가 츠네오에게 하는 대사에서도 그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이 보입니다. 그러나 앞선 말은 결국 관계를 원점으로 돌리는 말입니다. 

 할머니는 분명 구시대적 인물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하며 공짜란 없다 같은 말을 볼 때 꽤나 다사다난한 삶을 보낸 인물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배경에서 오는 손녀에 대한 부끄러움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어찌 보면 이해가 되죠. 하지만 그녀 역시 사랑 감사함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동시에 표현합니다.  비단 영화에서 나오는 할머니에서 그치기 보단 이 시대 노인 분들의 캐릭터성을 잘 보여준 인물입니다.


<쿠미코, 츠네오 - 카나에> 솔직함, 때론 날카롭게 때론 연약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쪽을 혼자 둘 수 없다고 지켜줄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츠네오가 말하는데 웃기더라.
   ...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럽다." _카나에

...
"그럼 당신도 다리를 잘라." _쿠미코

그 여자를 때렸어.
참을 수 없었어 장애인 주제에 내 애인을 뺏다니. 그래도 되는거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서 두 대나 후려치고 나니까
그냥... 다 귀찮아졌어. 츠네오도... 취직도...
엉망이야.

이런 꼴 하고 있는거, 가장 보이기 싫은 사람에게 보였네. _카나에,  츠네오에게

 사실 츠네오는 쿠미코와 교제를 시작하기 전에 카나에와 사귀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카나에 에게 쿠미코는 전문용어로 "나쁜년"이죠. 상황이 이러니 설령 카나에, 그녀의 꿈이 쿠미코같은 사람을 도우는 사회복지사라 하더라도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쿠미코의 뺨을 때립니다. 심지어 처음엔 카나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쿠미코에게 접근했던 츠네오를 생각하면 더욱이 심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영화의 갈등 요소를 키우는 인물 정도로 치부될 수 있지만 사실 이 영화가 담백하고 현실적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결말에서 나오는 그녀의 행동입니다. 바로 쿠미코와 헤어진 츠네오와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죠.

 카나에는 상당한 미인이란 설정을 가진 인물입니다. 게다가 영어도 잘하고 꿈도 뚜렷하니 성실한 대학생 정도론 생각할 수 있죠. 한마디로 츠네오 입장에서는 달리 거부할 이유가 없는 상대라는 겁니다. 하지만 먼저 츠네오는 이런 카나에를 두고 쿠미코를 선택합니다. 현실적인 어떠한 것 보단 자신의 사랑을 믿었죠. 그런 츠네오는 결국 많은 시간이 흐르기 전에 쿠미코와 결별합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느꼈었죠. 어쨌든 그래서 다시 카나에를 찾아가고 그녀는 이를 받아줍니다. 그럼 왜 그녀는 다시 그를 받아주었을까요? 분명 그녀도 처음에는 츠네오를 미워하고 증오했겠죠. 하지만 이 역시 사랑의 범주였나 봅니다. 애증이란 단어는 이를 잘 표현하죠. 좋아한 만큼 미워했고 다시 미워한 만큼 츠네오가 좋아졌던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그를 내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선택 보단 그저 그와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었나 봅니다.

 카나에는 그저 솔직했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말이죠. 우리가 살다보면 자신의 감정에 조차 솔직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감정의 순수성을 내세우고 주장했을지 모릅니다. 마치 이 행동은 순수한 선의에서 나온 것이다 라는 것 처럼요. 하지만 적어도 카나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사회가 내세우는 윤리적인 기준을 어겨 자신에게 스스로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행동까지 이어졌죠. 솔직함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카나에가 보여준 솔직함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성으로 느껴졌습니다.


<쿠미코 - 츠네오>  "일년 후 혹은 두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에요." _프랑수아즈 사강,  <한 달 후 일 년 후>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그러니깐, 주인공 이름이 조제지? _츠네오, 쿠미코에게

 조제는 프랑스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입니다. 쿠미코는 이 소설을 좋아하였고 츠네오에게 자신의 이름을 조제라고 소개합니다. 즉, 쿠미코는 소설의 조제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데 이러한 장치로 인해 위의 대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죠..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소설은 남녀 네쌍이 서로 얽히고 섥힌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요한 주제는 사랑의 유한성입니다. 이 같은 요소들로 인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요 주제도 현실적인 사랑, 사랑의 유한성 등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눈 감아봐.
...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 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_ 쿠미코, 츠네오에게

 쿠미코와 츠네오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쿠미코가 장애인이라는 것이죠. 쿠미코는 어렸을 때부터 대부분 혼자였습니다. 보호자인 할머니와 어린 시절 시설에서 만난 소수의 인간관계만이 있을 뿐 학교도 가지 않은 그녀는 주로 혼자였죠. 게다가 츠네오가 없었다면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컸습니다. 반면에 츠네오는 반대의 상황입니다.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인간관계를 다져왔고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예정이었죠. 둘의 입장 차는 절대적으로 여기서 나타납니다. 장애는 원인이지 결과가 아닌 것이죠.

 입장 차에 의한 상황은 갈등으로 귀결됩니다. 처음에 이러한 입장 차이는 두 사람 모두에게 흥미였습니다. 츠네오가 쿠미코에게 왜 계속 산책을 가고 싶냐고 묻자 쿠미코는 세상에 보고 싶은게 너무 많기 때문이라 답 합니다. 츠네오 입장에서는 당연시 되었던게 쿠미코에겐 갈망의 대상이었죠. 그는 휠체어에 보드를 연결하여 그녀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거리나 풍경, 속도 등을 경험시켜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 차는 결국 두 사람을 갈라서게 합니다.

결혼?
바보
그럴 리가 있냐?  _쿠미코, 코지에게

 먼저 깨달은 건 쿠미코였습니다. 츠네오의 부모님을 뵈러 가기 전 이미 그와의 이별을 예상한 것이죠. 반면 츠네오가 두 사람 간의 입장 차에서 오는 현실적 한계를 느낀 것은 여행 중이었고 결국 그 때문에 부모님을 뵈러 가지는 못했지만 이마저도 극복 가능 대상으로 보았는지 여행 후에도 몇 달간 쿠미코와 연애를 합니다. 하지만 결국 쿠미코와 헤어지고 카나에 에게 돌아가게 되죠.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츠네오의 감정 변화였습니다. 분명 츠네오는 쿠미코를 사랑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별하고 쿠미코를 선택했죠. 하지만 그에게 쿠미코를 오직 사랑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쿠미코와 살면서 느끼는 힘든 점이나 부모님과 같은 외부의 시선 때문에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점차 복합적인 감정으로 섞였죠. 애초에 쿠미코가 장애인이 아니였다면 정말 츠네오가 그녀와 연애를 시작했을까?라는 점도 의문입니다. 일말의 동정심을 배제한 채 츠네오의 감정을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카나에 에게 결별 이유를 말한 것만 봐도 그렇죠.

이별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한 가지 뿐이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헤어져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조제는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_츠네오, 독백

 결정적으로 쿠미코와 헤어지고 다시 카나에 에게 돌아갔을 때 츠네오는 카나에와 만나 돌아가는 길에 오열합니다. 츠네오의 감정이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입니다. 쿠미코에 대한 사랑, 자책 그리고 동정심. 복합적인 감정은 그의 감정선을 계속 흔들고 결국 오열을 터뜨리고 맙니다. 쿠미코와 츠네오는 표면상 담백한 이별을 하지만 결코 이별이란 감정이 그렇게 단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테레사 수녀님도 어쩔 땐 도망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힘들어서 말이에요.


  쿠미코와 츠네오가 헤어졌기에 감정의 순수성이란 발상이 떠오른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준 감정들 그 자체였죠. 할머니는 쿠미코를 사랑했지만 마냥 사랑만 할 수는 없었죠. 그녀는 손녀를 보호하여야 했고 동시에 손녀가 부끄러웠죠. 쿠미코도 츠네오를 사랑했지만 그 속엔 유한성이라는 사랑과는 맞지 않은 감정 또한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카나에는 쿠미코를 미워했지만 또 동정했고 츠네오를 사랑했지만 미워했습니다. 츠네오는 순수한 사랑을 믿었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힘 또한 믿었지만 결국 그것에 좌절하고만 맙니다.

 결국 순수한 감정이란 없나 봅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엔 적더라도 약간의 '불순물 감정'이 포함되어 있겠죠. 그 감정이 어떠한 감정으로 느껴지느냐는 여러 구성원 중 가장 비중이 큰 구성원이 정체성을 가져간다고도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이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더라도 어쨌든 물인 것 처럼이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이러한 점을 담백하고 간결하며 설득력있게 전해주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P.S.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7월 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됩니다. 제가 이 리뷰를 쓴 이유이기도 하고요.

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