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공포소설 :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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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소나기

DIRECTOR · WRITER: 황순원

BOOK / MOVIE / ETC: 소설

SCORE ★★★

REVIEW:


학창시절에 읽었던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는 어린 소년의 풋풋한 첫 사랑 이야기였다. 

최근 학교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관점의 읽기를 경험했는데 공유해보고자 한다. 

우선은 배웠던 내용을 적을거고

맨 아래쪽엔 그걸 토대로 내 나름대로 <소나기>를 해석한 내용을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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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내용 : 소설의 주인공은 소년인가? 소녀인가?


이런 관점의 전환은 이전부터 <줄리어스 시저>나 <일리아스>의 비평에 잘 나타났다.

진정한 주인공은 시저가 아니라 부르투스야! 

진정한 주인공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헥토르야!


소나기도 사실 진정한 주인공은 소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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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주인공이라 생각해보자.

이렇게하면 <소나기>는 조선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며 몰락하는 양반가문의 이야기로 변한다.


소설의 첫 문장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녀 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1.  '윤초시'에 포커스를 맞춰 읽어보자.

윤초시 : 초시 시험에 합격한 윤씨 가문

초시 : 과거제도의 도단위 예비고사인 소과의 첫 번째 시험

소녀는 조선시대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양반 가문의 딸이다.


소설의 마지막 단락

'윤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걸 보면......'


2. 마지막 단락까지 가면서 '대추' 와 '닭'에 집중해보자.

대추 : 옛날 양반들은 대추나무를 마당 앞에 심으며 자손의 번성을 기원했다. 

         지금 소녀의 집은 옛날 윤초시가 살던 양반집이다. 

닭 : 소년의 집은 소녀의 집에 닭을 보낸다. 

     소년의 가정은 소녀의 집에 신세를 지는 소작농이다.


소설의 거의 끝 부분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3. 장소에 집중해보자.

양평 : 양평은 예로부터 서울에서 깊은 상처를 받은 양반들이 은거하는 곳이다.


3가지 단서를 종합해보면 <소나기>는 농업사회에서 상업사회로가며 몰락하는 양반 가문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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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를 읽으면 보통 아래의 내용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잡는 것이었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소녀의 눈이 금세 '바보, 바보, 바보'할 것만 같았다.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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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뭘까 고민해보았다.

그 결과 내린 답은 '국민 정서가 그렇고 시대 정서가 그렇기 때문'이었다.


Q. 국민 정서, 시대의 정서를 알 수 있는 법은 어떤게 있을까?

A. 문학비평을 보면 알 수 있다.


Q. 문학 비평이 무슨 상관인데?

A. 문학비평은 시대를 반영한다. 당대에 유행했던 학자의 이론이나 정서 등이 그대로 녹아든다.

50년대 <소나기>의 비평은 '냉혹한 현실과 붕괴되는 인간의 의미'였다.

60년대 <소나기>의 비평은 '소년의 성장 소설'이었다.

가끔 보면 이해가 안되는 이상한 비평들이 있다. 

<소나기>가 인간을 최면술에 빠뜨린다는 비평도 있었다. 


Q. 그럼 우리들은 이해가 안가는 비평들, 예를 들면 50년대의 비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A. 그것은 특정 시대를 이해하는 근거자료가 된다.

50년대엔 <소나기>가 용납되기 어려운 시대가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당시 시대배경을 조금만 공부해보면 이상했던 비평도 퍼즐 맞추듯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구체적인 예시를 쓰면 글이 난해해지니 문학비평집을 사서 보도록!


Q. 비평도 일종의 해석이다. 멀리 나간 해석은 거르는게 좋지 않나?

A.  좀 오버한 것 같은 해석이라 판단돼도 해석의 근거를 텍스트 내에서 찾을 수 있다면

오버한 해석이 아니다. 오늘 적은 '몰락하는 양반가문의 이야기'라는 해석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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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읽자는 시도는 아래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평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건지?

비평이라는 작업이 갖는 의미가 뭔지?

집필 의도와 다른 해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한개의 글을 만명의 독자가 읽으면 만개의 작품이 된다는 위화의 말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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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비치된 베스트셀러 또한 이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면 베스트셀러와 비평집을 읽자.

뉴스와 신문, SNS에선 곧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반면

책은 사회의 명과 암을 모두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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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참 이상한 시대다.

종이 매체의 종말을 운운하는 지금

전례없이 많은 문학비평집이 탄생하고 인쇄되고있다.

절판과 적자 속에서도 이 시대의 정서를 담아내려는 민간의 독립비평 시도 또한 많다.


비평을 하려는 이유가 뭘까?


뭔가를 아는 순간 반드시 모르는게 생긴다.



내 마음대로 소나기


작가는 단 한글자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고 했다.

아닌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데아' 라던지 '메타포'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면서 그냥 삘이 와서 썼던데?

그럼 허투루쓴거 아니야?

아니야!~!~!~!~! 작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 단어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무의식의 의도를 찾아내는게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재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무튼 나는 <소나기>에서 물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사용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왜 물을 많이 썼을까? 라는 질문을 했고 

작가가 물의 속성을 빌려 뭔가를 전하려 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소설인만큼 음양오행의 의미를 담아서 쓴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다음을 참고했다.

논문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 해석 교육의 가능성 모색>

책 

<음양오행 이야기>

<알기 쉬운 음양오행>


알아낸 것들

물(水)은 오로지 음의 기운이며 

물의 속성으로 사후(死後)의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물(水)은 맑고 탁함 두 가지의 모습이 있다. 

맑아도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탁해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물(水)이 발산하는 감정은 공포이다. 

여자는 음을 대표한다. 

물(水)의 최종 목적은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결론

<소나기>는 음기가 가득한 사후의 이야기이다. 

공포소설이다.

쏟아지는 소나기는 흙과 만나 탁한 속성을 지니고 어둑한 하늘과 함께 공포를 발산한다.

죽음이 엄습한 소녀의 하루 이틀을 지켜보자..



궁금한 점

물에는 공포, 멈춤 같은 속성 외에 새로운 생명과 시작의 의미도 갖고 있었다. 

작품이 되게 암울하게 끝난 느낌이 드는데 

이후에 전개될 이야기엔 새로운 생명이나 시작 같은 희망은 아예 없는 걸까? 

소설 속에서 그에 대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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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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