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현상학, 비판적 실재론, 과정신학, 실존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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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서양철학사

DIRECTOR · WRITER: 힐쉬베르거

BOOK / MOVIE / ETC: 서양 철학사 책

SCORE ★★★★★

REVIEW:


정리글이라 길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를 완독한다. 마지막으로 현상학과 실존주의 내용을 정리하기에 앞서 느낀점 정리를 해본다.




힐쉬베르거의 책은 독자가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도록 많은 지도를 해준다. 역사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온 느낌.


철학사를 접하며 느꼈던건.. 철학이라는게 강의실과 책 안에만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강의실과 책 밖으로 뛰쳐나와 우리의 삶과 정신에 발을 들인 것은 종교의 철학이었다.


 인류의 정신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철학이 있다면 그건 종교의 철학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누구도 경전의 이야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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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종교는 마루 종자에 가르칠 교자를 쓴다. 


나는 등산하듯 공부하기보다 마루의 가르침에서 시작해 하산하듯 공부하기로했다.



19세기의 도그마



19세는 형이상학과 종교가 허구며 오직 현상(나타나서 보여지는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다! 라는 도그마의 시대였다.


이것을 현상주의라고 부르는데 여러가지 현상주의 중 프래그마티즘을 살짝 적어본다.


프래그마티즘이란 실용주의라고 번역되며 감각적인 경험만을 인정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이다. 프래그마티즘 철학자로 유명한 사람은 랑게,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등이다.



한 마디로 프래그마티즘이란 - 어떤 것이 우리에게 유용하고, 또 마음에 들고, 우리를 드높여 준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그게 종교라면 그 종교도 신앙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철학은 객관에 대한 주관의 반항, 권력철학의 현대적인 형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상학



20세기에 들어서자 현상학이란 철학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슬로건은 객관과 본질로의 전환이었다.


대표적인 현상학자로 하이데거의 스승인 훗설이 있다. 


훗설


훗설에 따르면, 우리는 뭔가를 인식할 때 우리는 각자의 관점과 주변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의식을 배제하고 직관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만 객관적으로 참된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이 현상학이다.



비판적 실재론



451 공산주의자의 이론을 드디어 맛보았다. 그동안 뭔 소린지 몰랐는데 이제 조금은 알것 같다.


비판적 실재론은 의식적으로 사물과 존재 전체의 본질을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진정한 형이상학을 하려는 것이고 가장 귀납적인 형이상학을 만들어낸다.



비판적 실재론은 실재에 대한 확신으로 출발하지만, 인식론적인 비판을 고려하고, 존재에 관한 사고의 주관적인 요소들도 생각한다.


이 이론에 따르자면, 주관적인 요소들은 주관적인 것이라고만 평가되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현실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요소들을 계속해서 연구해나가면 주관적인 것을 제한하고, 객관적인 내용을 넓히는데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섬게알과 귀납적 형이상학



귀납적 형이상학을 이해하기 좋은 섬게알의 예시가 있다.


섬게알은 세포분열과정의 첫 단계에서 쪼개질 때, 알이 쪼개진다해도 죽지 않고 쪼개진 부분들이 계속 살아 남아서 나중에 섬게가 된다.


일반적인 논리를 따르자면, A를 쪼개고 해체하면 하나의 부분이 되는거지, 부분 자체가 나중에 원래의 A가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생물계에서 많이 관찰되는데 이를 통해 기계론적인 사고에 대립하는 목적론적 의견을 내세우게 된다.


물리와 화학의 세계에선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만이 실재적이고 작용하고 있는데 생물계에선 생성과 자기보존이라는 활동이 전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된다.


다른 예시로 너도밤나무와 벌의 이야기도 있다. 벌이 너도밤나무에 벌침을 쏘고 거기에 알을 낳으면, 나무들이 독자적으로 영양조직을 발달시켜 벌이 자랄 수 있게 먹이와 영양을 공급한다.


너도밤나무


또한 애벌레에게 벌레집을 형성해주기도 하고 피막을 만들어 보호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호된 애벌레는 가을에 피막과 함께 떨어져 겨울에 낙엽과 눈의 보호를 받고 봄에 성충이 된다.


이런 현상들은 기계론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다. 각각의 현상들을 쫓아가면 우리는 식물, 동물을 넘어 각 개체들에게는 단체를 돌보려는 본능, 남에게 봉사하려는 합목적성 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모든 존재를 제어하는 개체를 넘어선 영혼적인 것이 있다는 견해도 나올 수 있게 된다. 그치만 이렇게 경험을 넘어선 세계관에 대해 가설로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귀납적 형이상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과정신학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물리학자였는데 나중에 예수회의 회원이 되어 신학자로 살았다.


샤르댕


샤르댕은 화이트헤드와 함께 과정철학, 과정신학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신도 변화하는 인간의 세계에서 영적으로 교류하며 같이 나아간다는 이론이다.


과정신학은 현재 생태신학과 발을 맞추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이와 반대되는 이론으론 유신론이 있다.


유신론은 세계와 별개로 신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물질의 구성에 불과하며 미물과 인간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과정신학 이론은 유전공학, 로봇공학, 컴퓨터 공학과 일맥 상통한다. 따라서 재평가 되고 있는 이론이다.


이를 다른 말로 만유신재론이라 부르며 만물이 신 안에 존재한다고 해석한다.



실존철학 - 야스퍼스



현대 정신사조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실존철학이다. 


비관주의, 회의주의, 상대주의, 현실주의, 반주류 등과 일치하며 실존철학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 생각한다.


독일 실존철학의 경우 불안, 근심, 비관주의 , 비극적 영웅적 허무주의 등이 슬로건이며 강조된다. 독일 실존철학 대표자로 야스퍼스와 하이데거가 있다.


야스퍼스


야스퍼스에 따르면 과학의 객관적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과학에서는 모든 존재가 밖에서 관찰 할 수 있는 객관적 존재로 축소된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를 파악할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존을 밝혀내려면 각자 자기의 존재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아야하며 그 근원을 인식해야 한다.


실존은 본질적으로 나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진 않았지만 자연, 문화, 역사적 조건들 안에 현존해있는 존재이다. 


하이데거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실존철학이다. 그렇게 자기를 자신의 실존으로 되돌려놓는 데에는 특별한 한계 상황이 필요한데 바로 죽음, 다툼, 고통, 죄 등이다.


이러한 한계 상황 속에서는 외적 조건이 무너지며 오로지 나 자신의 근원을 향해 내가 던져지게 된다. 또한 실존은 혼자서 자신을 현실화 시킬 수 없으며 다른 실존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에겐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통해서만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실존철학 -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철학은 실존존재론이다. 존재자와 구별된 존재를 주장한다.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이전까지의 모든 형이상학을 부수려고 한다. 우선 인간의 실존을 해석하려고 한다. 여기서 실존이란 자기 자신에 앞서서 있는 것, 죽음으로 나아가는 존재 등 시간성으로 해석된다.


인간은 존재를 지키는 자이며 목자일 뿐이다. 


음 솔직히 하이데거는 이해를 못했음 ㄷㄷ.



실존철학 -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실존을 본질에 앞서가게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첫번째 것은 그의 현존재이다. 그래서 실존주의의 첫번째 근본명제는 <인간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다.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급진적인 허무주의자이며, 무신론자이다.


그에 따르면 실존은 자기 안에 이미 자신에 대한 부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은 모순적이다.


'실존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며, 존재하는 비존재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란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해 자신을 의도적으로 내던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에 의해 규정된다. 인간은 아직 어떤 것도 되지 않은 것으로서의 존재다.


인간은 현재 존재하는 자신일 뿐 아니라 자기를 무엇이 되도록 만들어가는 목표 자체이기 때문이다.




끝 ~ 이제 다시 다른 서양철학사 책을 읽고 공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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